Analysis #Cover Story

애플 좇아만 간 삼성… 화려한 웹 추구 워싱턴포스트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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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6.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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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흥하는 마케팅 망하는 마케팅

나쁜 마케팅
세계 최초로 MP3폰 TV폰 선보인 삼성 '팬보이'도 생겼지만 2인자 모습에 실망감
인터넷 독자 늘었지만 열성 독자 떨어져나간 WP, 폴리티코에 뒤져


미국 뉴욕의 전자제품 판매점 베스트바이 내 삼성전자 전용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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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전자제품 판매점 베스트바이 내 삼성전자 전용 코너. /블룸버그
①삼성: 애플과 비교 광고로 독자성 잃어

1990년대 초반 미국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아시아의 저가 전자제품 기업에 가까웠다. 이런 평가는 삼성전자가 휴대폰을 중심으로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들어 서서히 뒤바뀌기 시작한다. 삼성전자의 역량을 먼저 알아본 것은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고 신제품을 남들보다 빨리 경험하는 미국의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와 전자기기 마니아 층이었다. 삼성전자가 1999년 세계 최초의 MP3 내장 폰, 2000년 세계 최초 TV기능 탑재 폰을 잇달아 선보이자 '기가 막힌 제품이 나타났다'며 자진해서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들을 '삼성 팬보이(fanboy)'라고 불렀다.

미국 전역에 삼성 팬보이를 늘린 결정타는 2003년에 나왔다.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하고, 5억달러(약 593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매트릭스'의 후속작에서 주인공이 쓰는 전화기로 삼성전자 휴대폰이 등장했다. 휴대폰 마케팅 역사에 꼽히는 '대박' 신화가 터지며, 영화 팬들이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에 빠지게 됐다. 이때 불어난 삼성 팬보이들은 이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2가 애플의 아이폰과 특허 문제로 다툴 때나 CES(소비자가전박람회)나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의 발표회에서 활약하며 삼성전자에 큰 힘을 보탰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미국 시장 진입에 든든한 기둥이었던 이들은 오히려 삼성전자가 미국 시장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던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게 마케팅을 펼친 부작용이었다. 삼성전자는 2013년 갤럭시4 광고에 투자한 100억달러를 필두로 애플보다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미국 시장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대규모로 임시 가두 매장을 차려서 인지도를 높이고, 주요 통신사에 더 많은 보조금을 제공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 방송과 지면에서는 미국에서 적나라한 비교 광고가 허용된다는 점에 집중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자사 제품에 견줘 깎아내리면서 더 많은 기능을 강조했다. 마케팅 전문가 세스 고딘은 "삼성전자만의 개성 있는 제품을 아끼던 삼성 팬보이들이 삼성전자가 스스로 '애플 발목을 잡아야 하는 2인자'를 자청하고, 다른 기업이 하던 프로모션을 그대로 따라 하자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명인에 지나치게 기댄 광고 역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2014년 미국의 국민 MC 앨런 드제너리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대 위에서는 협찬받은 삼성전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후,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해 '삼성을 배신했다'는 구설에 올랐다. 2013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에 오른 데이비드 오티스 역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이용해 셀카를 찍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삼성전자와의 마케팅 계약에 따른 계산된 행동으로 밝혀지면서 백악관이 '유감스럽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무리한 마케팅이 거듭 이어지면서 팬덤이 무너진 데다, 중국산 스마트폰의 저가 공세까지 거세지면서 삼성전자는 미국 시장에서 애플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탯카운터가 조사한 결과, 2018년 9월 기준 애플은 시장 점유율 53.7%, 삼성전자는 25.11%를 기록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워싱턴포스트 본사에서 행인들이 당일 뉴스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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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의 워싱턴포스트 본사에서 행인들이 당일 뉴스를 읽고 있다. /블룸버그
②워싱턴포스트: 화려함 추구하다 특종 소홀

1877년 창립한 워싱턴포스트는 창립 136년 만인 2013년 8월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에게 팔렸다.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사들인 후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대거 채용하고 '디지털 퍼스트'를 외쳤다. 뉴욕타임스의 성공 사례를 뒤따르기 위해 동영상이나 웹콘텐츠를 강화하고, 100명 남짓이었던 엔지니어 인력을 2018년 250명으로 2.5배로 늘렸다. 엔지니어에게는 평균 연봉 7만8000달러를 안겨주며 5만2000달러를 받는 기자보다 좋은 대우를 해줬다. 자신이 창립한 아마존과 협업 마케팅을 펼치며 스스로 '가장 혁신적인 미디어 회사'임을 강조했다. 대신 워싱턴D.C. 인근 지역 소식을 담당하며 협력했던 '더 가젯'과 같은 소규모 지역 매체에 대한 지원은 비용 문제를 들어 끊었다.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베이조스의 투자가 이어지자 미국 전역의 젊은 독자들은 인터넷으로 워싱턴포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 온라인·모바일 독자 수는 5년 만에 65%가 늘었다, 그러나 창립 초기부터 구독료를 내며 워싱턴포스트를 읽어 온 워싱턴D.C. 지역 열성 독자들의 구독률은 도리어 떨어졌다. 세계 정치의 중심지를 자부하는 워싱턴 독자들이 생각보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탓이다. 중앙지보다 지역 소식지를 선호하고, 일상생활 대부분 영역에서 지역사회 서비스와 비즈니스에 의존하던 워싱턴D.C. 내 독자들은 '우리 마을 소식이 없는 워싱턴포스트'를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워싱턴의 핵심 오피니언 리더들인 정치인들의 관심도 워싱턴포스트에서 신생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로 옮아갔다. 정치 특종에 집중하던 매체 성격이 화려한 웹콘텐츠 중심으로 바뀐 탓이다. 2007년 생긴 폴리티코는 워싱턴포스트가 대중에 집중하는 사이 백악관과 의회 같은 워싱턴 정계의 정책·입법 관련자, 로비스트로부터 사랑받으며 창립 10년 만에 기자 수가 300명이 넘는 대형 매체로 자리 잡았다. 미주리대 저널리즘 대학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에는 신뢰도에서도 워싱턴포스트를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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