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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사기" 외친 1년 후, 암호화폐를 직접 만들다

최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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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6.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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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현실… 과거발언 후회한다"
작년 1월 사과 회견 뒤 'JPM코인' 내놓아

하루 7000조원 오가는 회원사 결제에 도입…
해외송금 시간 단축수수료도 대폭 낮춰

세계 은행 간 블록체인 맹주 노려


최근 암호 화폐(가상 화폐)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국 최대 금융회사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Dimon·63) 회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면서도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해선 적극적 행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1비트코인당 1100만원을 돌파하며 연중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연초 300만~400만원에 머물던 비트코인 시세는 지난 4월부터 오름세로 돌아섰다.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확산되면서 암호 화폐의 자산 가치가 인정받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 전쟁으로 중국 위안화 가치가 불안해지자 위안화를 갖고 있던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으로 갈아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암호 화폐 시장은 개미 투자자들이 몰리며 가격이 크게 출렁거렸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글로벌 기업들이 암호 화폐의 산업화를 선언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암호 화폐 'JPM코인' 선보이다

이러한 흐름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인물이 다이먼 회장이다. 그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비트코인 등 암호 화폐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작년 1월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했던 발언을 후회한다"며 공개적으로 입장을 바꿨다. 또 "비트코인을 만든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현실이며 암호화된 달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이먼 회장은 이러한 발언을 한 지 1년 만인 올해 2월에 자체 암호 화폐 'JPM코인'을 세상에 내놓았다. 미국 금융회사로는 최초이다. 그는 JP모건체이스의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인스타메드 등 블록체인 업체도 잇따라 인수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인 '쿼럼(Quorum)' 업그레이드에 나섰다. 이런 JP모건체이스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올해 들어 가장 뜨거운 기업'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경제 전문 잡지 포브스는 지난 4월 '세계 50대 블록체인 기업'에 JP모건체이스를 올렸다.

다이먼 회장이 이끄는 JP모건체이스는 미국의 1위 은행이다. 블록체인이나 암호 화폐 관련 사업 없이도 지난해 325억달러(약 38조5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1년 전보다 33%가 불었다. '월스트리트의 황제'라고 불리는 다이먼 회장은 은행의 전통 업무인 예금·대출 부문에서 강점을 발휘하면서 충분히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이 가능한데도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선언한 것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전통 금융회사가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결합) 스타트업에 밀려 결국 해체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에 맞서 다이먼 회장이 반격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경우 저렴한 수수료, 맞춤형 서비스로 무장한 다양한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기존 금융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금융 거래에 자체 암호화폐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은 뉴욕 JP모건체이스 본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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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금융 거래에 자체 암호화폐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은 뉴욕 JP모건체이스 본사의 모습. /블룸버그
암호 화폐로 독자적 경제 블록 구축

다이먼 회장이 지난 2월 선보인 'JPM코인'은 미국 달러화와 1대1로 바꿀 수 있는 암호 화폐다. 1코인이 곧 1달러다. JP모건체이스는 "송금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올해 시범 운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용화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업계에선 금융 당국과 관련 규제를 놓고 협의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JPM코인이 상용화되면 JP모건체이스 산하 금융회사를 통해 거래하는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은 실제로 돈을 주고받는 대신 가상의 화폐인 코인을 쓸 수 있다. 돈을 주고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JP모건체이스의 설명이다.

JP모건체이스의 기업 거래 규모는 하루 6조달러(약 7113조원)가 넘는다. 그중 일부만 코인으로 전환해도 JPM코인의 거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코인을 활용해 ETF(상장지수펀드), 예금 등 다양한 금융 상품도 출시할 수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JP모건체이스의 변신은 철저하게 계산적인 움직임"이라며 "채권, 주식 등 기존 금융 상품의 수익률이 자꾸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암호 화폐 상품이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JPM코인이 활성화되면 JP모건체이스만의 경제 블록이 구축된다"며 "JP모건체이스는 그 안에서 기업과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수익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다이먼 회장은 일단 기업 거래에 JPM코인을 활용할 예정이지만 일반 소비자로 확대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는 "JPM코인은 은행 내부는 물론 기업 간 거래에 사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개인들의 금융 거래나 소비 활동 등 일반 결제에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송금 서비스 획기적 전환

다이먼 회장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해외 송금 플랫폼 'IIN(은행 간 정보 네트워크)'도 만들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더욱 빠르고 저렴한 해외 송금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지금은 해외 송금을 하려면 국제 은행 간 통신망을 거쳐야 해 보통 2일 이상 걸린다. 2주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 수수료도 송금액의 5~10%로 비싼 편이다. IIN을 이용하면 몇 분 안에 송금이 가능하다. 수수료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IIN에는 이미 세계 250여 금융회사가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신한·우리·하나·농협 등 한국 금융회사들도 여럿 이름을 올렸다. 암호 화폐의 미래를 다룬 '넥스트 머니'의 저자 이용재씨는 "다이먼 회장의 구상은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어 글로벌 금융 시장의 맹주(盟主)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이먼 회장의 도전이 성공하면 세계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암호 화폐를 출시하며 따라갈 전망이다. 실제로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 등이 암호 화폐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벌써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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