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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업들 해외 증시상장·자원투자 크게 늘어… 로펌 국제화는 필수"

오광진 조선비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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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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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의 대륙종횡 (9) 중국 최고 로펌 킹앤우드 맬리슨스의 왕쥔펑 창업자


오광진 조선비즈 베이징특파원
오광진 조선비즈 베이징특파원
파키스탄 민간전력투자위원회는 지난 2월 파키스탄에서 870km의 고압 송전망을 까는 사업을 위해 16억5800만달러 조달이 마무리됐다고 발표했다. 현지에서 외국 투자자가 BOOT(건설 후 소유·운영하다 현지 정부에 이전하는 방식)로 진행하는 첫 번째 송전망 구축 사업으로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의 대표 프로젝트 중 하나다. 또 지난해 7월엔 홍콩 증시에 중국 핀테크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인 '51신용카드'가 상장했다. 중국 핀테크 기업의 첫 홍콩 증시 기업 공개(IPO)로 기록됐다. 이 두 사업에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 중국 로펌 킹앤우드 맬리슨스(중국명 金杜) 창업자인 왕쥔펑(王俊峰) 글로벌 회장은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1000여 건에 이르고, 중국 상위 유니콘 100위권 중 75사를 고객으로 확보했다"고 말했다.

(왼쪽 사진)왕쥔펑 킹앤우드 맬리슨스 창업자 겸 회장이 지난 1월 5일 베이징 만리장성 인근 휴장지 고북수진(古北水鎭)에서 가진 연례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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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왕쥔펑 킹앤우드 맬리슨스 창업자 겸 회장이 지난 1월 5일 베이징 만리장성 인근 휴장지 고북수진(古北水鎭)에서 가진 연례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킹앤우드 맬리슨스
브랜드 순위 평가 아시아 1위

킹앤우드 맬리슨스은 2012년 180년 역사의 호주 로펌 맬리슨스를 인수 합병하면서 중국 로펌 중 가장 먼저 국제 로펌 대열에 뛰어들었다. 영국의 법률 시장 조사 기관인 아크리타스(Acritas)가 발표하는 '아시아·태평양 로펌 브랜드 지수' 순위에서 미국의 베이커앤매킨지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 로펌·변호사 평가 기관인 체임버스앤파트너스의 아·태 지역 평가 지수인 '체임버스 아시아-퍼시픽' 2019년 순위(일본 제외)에서도 킹앤우드 변호사들이 은행 융자, 반독점 등 20영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법치가 아닌 인치의 나라로 알려진 중국에서 민간 법률 시장이 생긴 건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 개방 바람을 다시 일으킨 남순강화(南巡講話) 전후다. 1993년첫 민간 로펌 창업 대열에 뛰어든 왕쥔펑 회장의 시선은 국제 로펌에만 머물지 않는다. 캥앤우드 맬리슨스를 축으로 계열사들을 묶어 기업 서비스 생태계를 한창 조성 중이다. 2015년 설립된 허이(和易)그룹의 수석 전략관을 맡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허이는 투자 자문, 투자, 싱크탱크, 공익 사업의 네 부문을 주축으로 아시아의 골드만삭스를 지향하고 있다. 허이 외에도 인재 양성을 위한 진두학원(KWM Academy), 법률과 빅데이터를 결합한 로테크 업체인 리마이(Legal Miner), 예술 애호가를 위한 진두 예술센터(KWM Art Center)도 그의 생태계에 포함돼 있다. 베이징에서 변호사 5명으로 구성된 법률 사무소로 시작해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 도시 27곳에 파트너 580명을 포함, 3000여 변호사를 두고 있는 킹앤우드의 왕 회장을 지난 13일 베이징 환구금융중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나 창업 스토리를 들어봤다.

중국 경제성장 물결 잘 올라타

―안정된 국유 기업 직장을 두고 왜 창업했나요.

"1990년대 초만 해도 개혁 개방 초기 단계였다. 중국 전체 변호사가 2000명 정도에 불과했고, 모두 국유 체제에 있었다.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에서 일하며 경제 발전에서 로펌의 역할과 중요성을 익히게 됐다. 중국 법률 서비스 진보에 공헌하겠다는 이상과 열정을 갖고 시작했다. 처음엔 최소 요건인 변호사 5명을 채우지 못해 2명을 빌리기도 했지만, 1년도 안 돼 많은 변호사가 들어왔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창업은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성공한 요인이 뭡니까.

"물론 운이 좋았다. 중국 경제가 고성장하는 시대가 매우 특수한 기회를 줬다. 개혁 개방 초기 중국의 경제 규모는 한국보다 못했을 수 있지만 세계 2위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각 업종에서 기적을 창조했다. 성공하지 못하는 게 비정상이다. 성공의 특수한 면도 있다. 많은 시스템이 세계적 로펌과 같다. 모든 변호사와 직원은 창업 정신으로 일을 하면서 로펌 전체의 이익을 키우는 열정이 충만해 있다. 국제 일류 로펌을 만들겠다는 장기 목표와 이상을 공유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함께 가고 있다."

한국 관련 사업을 수시로 논의하는 왕쥔펑(왼쪽) 킹앤우드 맬리슨스 회장과 김보형 한국 담당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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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련 사업을 수시로 논의하는 왕쥔펑(왼쪽) 킹앤우드 맬리슨스 회장과 김보형 한국 담당 파트너. /킹앤우드 맬리슨스
파트너들은 수호지 두령처럼 한 형제

―그런 집단 열정을 어떻게 이끌어냈나요. 급여를 많이 줍니까.

"돈이면 통하는 게 맞는다. 하지만 많은 경우 중국인들은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영관리위원회를 만든 것도 그래서다. 지금은 많은 중국 로펌이 이를 두고 있지만 우리가 하기 전에는 없었다. 로펌은 보통 모든 파트너가 평등한 체제지만 경영관리위원회에 속한 파트너 16명이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해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공산당 집단지도체제와 비슷하다. 성공의 근본은 발전 비전과 핵심 가치에 대한 집단의 공감대가 명확하고 견지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래도 인센티브가 있어야 움직이는 게 아닙니까.

"중국의 어느 로펌도 우리와 관리 체제나 분배 체제가 완전히 같은 곳이 없다. 처음엔 모든 이익을 똑같이 나눴다. 창업 자금 투자 규모는 달랐지만 그렇게 했다. 하지만 철밥통은 안 된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2년 만에 지금의 실적 시스템을 만들었다. 일반 로펌에서는 사업을 수주하면 그중 일부를 로펌에 주는 분배 구조지만 우리는 모든 이익을 합친 뒤 각자의 실적에 따라 분배하는 시스템이다.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이 적은 사업 의뢰가 들어와도 자신이 직접 챙기려는 유혹을 피할 수 있다. 전체 이익을 키우는 게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협업 문화가 자리 잡았다. 실적은 공헌도에 따라 늘어난다."

―창업 후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고객의 기초인 중국 경제가 꾸준히 발전해 큰 좌절이 많지 않았다. 사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오히려 사업이 잘나가던 창업 초기였다. 함께 창업한 파트너 2명이 첫해 떠나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창업할 때 얼마나 돈 벌지는 생각지도 않았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나 수호지의 인물들처럼 천하를 위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복을 나눈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로펌에 한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대리인 신분, 관리자 심정으로는 안 된다. 능력이 있어도 열정과 책임이 없는 파트너나 직원은 떠나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은 매우 적다." (김보형 한국 담당 파트너는 왕 회장이 사무실에 파트너들의 휴식 공간을 만들 때 원탁 테이블을 주문하면서도 수호지를 언급했으며, 항상 위아래 서열이 없는 형제 개념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안주하면 발전 못 해"… 세계화 나서

―중국 시장도 큰데 굳이 국제화를 한 이유는.

"안주하면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2년 호주 로펌을 인수하기 전부터 국제화에 대한 뚜렷한 발전 전략을 갖고 있었다. 2001년 실리콘밸리에 첫 해외 사무소를 세웠고, 2005년 도쿄, 2008년 뉴욕에도 사무소를 뒀다. 호주 로펌을 인수 대상으로 선택한 건 중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적극 추진하던 자원 투자 사업에 강했기 때문이다."

―벤치마킹하는 법률인이나 금융인이 있나.

"솔직히 없다.어릴 때부터 법률가나 금융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에술가나 철학자나 장군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법률 일을 할 줄 몰랐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아직도 언제 나를 완전히 바꿀 기회가 올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물론 법조계나 금융계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성취를 이룬 인물이 있지만 한 번도 그런 인물이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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