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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문왕보다 내 정원이 더 작은데 왜 백성들이 욕할까… 제 선왕의 질문

서진영 자의누리 경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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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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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영의 동서고금 경영학] (9) 공유가치 경영

맹자의 답변 "與民同樂" <여민동락·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하다>


자의누리 경영연구원장
자의누리 경영연구원장
맹자(孟子)가 걸음을 멈추자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묻는다. "보기에 저의 원유(苑囿)가 어떠신가요? 너무 좁지 않습니까?" 원유는 왕이 울타리를 치고 새나 짐승을 서식시키는 궁궐 안의 동산을 의미한다. 맹자가 대답을 망설이자 제(齊) 선왕이 투덜대며 다시 묻는다. "옛날 주(周) 문왕이 만든 동산은 사방 70리에 이르렀는데도 백성들이 오히려 작다고 했는데, 제 것은 사방 40리밖에 안 되는데도 너무 넓다고 항의하니 도무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일갈하여 대답한다. "CSV(공유 가치 창출) 활동을 안 하시니 그런 것이지요."

CSV(creating shared value)란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Porter) 교수가 2011년도에 발표한 개념으로 사회적 약자와 경제적 이윤을 나누며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 공유하는 상생(相生) 활동을 의미한다. 기업이 수익을 창출해 일부를 환원하는 사회 공헌 활동(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넘어 기업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사회적 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이다.

일러스트=정다운 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정다운
맹자는 말을 잇는다. "문왕의 원유에는 온 나라의 나무꾼, 사냥꾼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어 함께 이용했으니 작다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이 원유에서는 사슴을 잡으면 살인죄에 준해 처벌하고 왕 혼자만이 즐긴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사방 40리의 함정을 파 놓은 셈이니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요. 그러니 여민동락(與民同樂)하셔야 합니다." '맹자 양혜왕(梁惠王下)'에 실려 있는 여민동락은 왕이 백성들에게는 고통을 주면서 자기만 즐긴다면 백성들이 반발하겠지만,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면 왕이 즐기는 것을 함께 기뻐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현대 기업 경영에서도 통한다. 기업이 CSV를 한다면 모두가 존경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기업들은 어떤 분야에서 공유 가치 창출을 할 수 있을까.

① 사회적 공유 가치 경영-교보생명

: 항산항심
(恒産恒心)

자신의 원유가 크다고 원성을 들은 제나라 선왕은 맹자에게 CSV의 첫째 분야인 사회적 공유 가치 경영을 잘하기 위한 정치가 무엇인가 묻는다. 맹자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 답한다. '맹자 양혜왕상(梁惠王上)' 편에 나오는 이 말은 항산(恒産) 즉, 일정한 생산(生産)이 없으면 바른 마음을 유지하는 항심(恒心)이 없다는 뜻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려움을 말한다.

삶의 질 저하, 사회구조 변화, 안전 위협 등의 사회적 위험을 해결해 줄 항산의 방법을 '교육' 분야에서 찾은 것은 교보생명이었다. 1958년 8월 7일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을 창립 이념으로 내세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설립한 신용호 회장은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현실을 타개할 방법으로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교육보험을 창안했다. 교육보험은 생명보험 원리와 청소년 교육을 접목해 학자금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사회 보장과 저축 기능을 갖춘 독특한 보험 상품으로, 신 회장이 3년여에 걸쳐 국내외적으로 조사·연구와 노력을 한 끝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교보생명이 1958년에 내놓은 첫 상품은 돈이 없어 대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것을 막아주는 '진학보험'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학생 약 300만명에게 학자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교보생명 역시 혜택을 보았다. 교육보험은 당시 높은 교육열을 반영하듯 선풍적 인기를 끌며 교보생명을 창립 9년 만에 급속 성장시켰다. 또한 단체 보험에 의존하던 보험업계에 교육보험이란 개인 보험의 장을 열었다. 기업의 경쟁 우위와 사회적 책임의 접점을 완벽히 찾아낸 것이다. 교보생명 신창재 현 회장은 "사람은 공기 없이 살 수 없지만 공기를 위해 살지는 않는다"며 "기업에 이익은 생존을 위한 연료이지만 그 자체가 경영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② 경제적 공유 가치 경영-현대백화점

: 발정시인
(發政施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자의누리경영연구원
항산항심을 다짐하는 제 선왕에게 맹자는 CSV의 둘째 분야인 경제적 공유 가치 경영의 원칙으로 발정시인(發政施仁)을 이야기한다. '맹자 양혜왕상'에 나오는 말로 '정치를 왕성하게 펴서 어짊을 베푼다'는 뜻이다. 인(仁)의 정치를 하면 천하의 농부들은 다 왕의 들에서 농사지으려 할 것이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왕의 시장에다 물건을 쌓아놓고 팔려 할 것이고, 여행하는 사람들은 왕의 길에 자꾸 들어와서 여행하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기업 경영에서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은 현대백화점의 명인명촌 사례이다. 장류, 전통 주류, 반찬류 등 지역 장인들이 생산하는 특산 음식물의 경우 전통 방식을 고수한 소량 생산과 영세성 때문에 위생 검증에 필요한 시설 및 검사 비용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백화점은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 장인 등의 위생 시스템 구축 및 검증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수천만원의 비용을 무상 지원하고 있다. 또 전통 식품 제조에서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전문가이지만 마케팅에 대한 이해도는 약해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장인을 위해 포장용기, 브랜드 서체, 포장 방식 등의 마케팅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백화점의 노력은 매출 성과로 이어졌다. 진도 발효식초의 김순양 장인, 강진 토하젓의 김동신 장인을 비롯한 67명이 48곳 지역 상품을 파는데, 2010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15개 점포에 입점해 있다. 2018년 매출 80억원을 기록하며 20배의 매출 신장을 이루어냈다.

③ 환경적 공유 가치 경영-SPC

:촉고 불입오지
(數罟 不入洿池)

CSV의 셋째 분야인 환경적 공유 가치 경영은 환경오염, 자원 고갈, 자연재해의 '환경 파괴'를 극복해 미래 세대들에게도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는 '양혜왕상' 편에서 "촉고 불입오지(數罟 不入洿池)하라"고 말한다. 촉고는 촘촘한 그물을 뜻하며, 이를 웅덩이와 연못에 넣으면 결국 물고기와 자라의 씨가 말라 멸종한다는 의미이다. 옛날 그물눈은 네 치로 만들어져 한 자 길이 이하의 물고기는 잡지 못하게 했다.

환경 측면에서 공유 가치 창출을 한 업체로는 제과제빵 업체인 SPC를 꼽을 수 있다. SPC의 던킨도너츠는 '노리드 컵(NO:LID CUP)'과 제품 패키지를 개발했다. 이는 플라스틱이 필요 없는 친환경 테이크아웃 컵으로, 자연 분해가 가능한 종이 재질을 사용해 환경보호에 효과적인 제품이다. 또 SPC의 파리바게뜨에서는 먹거리 비즈니스 속성상 제품의 구입부터 포장까지 없어서는 안 될 비닐봉투와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 전 매장에서 비닐 쇼핑백을 금지하고 재생종이 봉투를 유상 판매해, 연간 1억7000만장 이상의 비닐봉투 사용 감소 및 온실가스 8200t 이상의 감축 효과를 내고 있다.

④ 문화적 공유 가치 경영-백군대학

CSV의 마지막 넷째 분야인 문화적 공유 가치 경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문화를 제공하기 위해 필자가 속한 자의누리경영연구원과 육군이 손을 잡고 장병들에게 양질의 서평 콘텐츠와 영어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자의누리경영연구원이 개발한 '백군대학(百軍大學)'은 전자책 형태의 서평 앱으로 인문·경영 분야의 도서 서평을 읽을 수 있고 개별 진도 확인과 독후감 작성도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군 장병들이 입대 후 군대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징비록을 함께 읽어나가고 인성에 관한 책을 읽은 뒤 경영학 분야를 배우게 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기술들을 익히고 제대하기 전에는 소통과 영업, 질문법 등을 배운다. 복무 기간 20개월 동안 100권의 책을 읽는 과정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동주공제(同舟共濟)

서진영 원장

기업이 꼭 사회, 소비자와만 공유가치 창출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반자 기업들과의 공유가치 창출인 동주공제(同舟共濟)의 경영이 필요하다. 최근 출간된 '마쓰시타 고노스케'(사진·송희영 지음, 21세기북스)에서 파나소닉의 설립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기업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다. 사랑받는 기업이 경영의 최종 목표다"라며 CSV를 강조하고 있다.

마쓰시타가 사업 초기 맞이했던 관동대지진과 경제 불황의 두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동주공제의 경영 철학이다.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과 '후한서(後漢書)' 주목전(朱穆傳)에 나오는 말로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이해(利害)와 환란(患亂)을 함께함을 뜻한다.

마쓰시타 전기가 오사카에서 도쿄로 시장을 확대한 직후인 1923년 일어난 관동대지진은 도쿄 거래처 대부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이때 마쓰시타는 "외상은 반만 받고, 품귀 현상으로 제품 가격이 올라도 원래 값만 받아라"는 영업 방침을 내린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의리 있는 기업'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두 번째 위기는 1929년 미국발 경제 공황과 함께 찾아온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소비 감소가 일본 경제를 뒤흔들 때, 회사 간부들은 마쓰시타에게 대량 해고를 건의했다. 이때 마쓰시타는 전 사원을 모으고 선언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이다. 단 한 명의 인원 감축도 없고 월급도 전액 지급할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모든 직원들은 휴일에도 판매에 나서야 한다. 힘을 합쳐 지금 공장에 쌓여 있는 재고를 모두 다 소진해야 한다." 회사는 몇 년 뒤 직원 2000명, 공장 15곳 규모로 급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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