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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새 40배… 지구온난화 펀드 이글이글 타오른다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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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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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점점 커지는 지구온난화 채권


"기후변화는 단기적으로 개인과 한 가정의 삶에 심각한 피해를 주기도 하고, 금융회사를 포함한 지역 경제를 초토화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와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위원회(연준)는 기후변화가 미국 경제와 은행에 미칠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권한과 수단을 아끼지 않겠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월 의회 연설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연준이 쓸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26년 만에 최악의 피해를 끼친 허리케인이 미국 남부 플로리다를 덮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어 지난달 브라이언 샤츠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보내는 서한에서는 "각 지역 연방준비은행 12곳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예상치 못한 충격에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통화 정책에 몰두하기도 바쁠 경제 대통령이 어떻게 환경 정책에 관여할 수 있을까.

신재생에너지·쓰레기 처리 등 투자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기후변화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수조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자가 꾸준히 필요하다. '지구온난화 채권(green bond)'은 이렇게 막대한 자본을 모으기 위한 가장 현실적 해결책으로 꼽힌다.

지구온난화 채권은 환경이나 기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신규·기존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다. 미국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은 환경 관련 사업에 나설 때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같은 주요 은행을 통해 관련 채권을 찍어 발행한다. 신재생에너지와 수소전기차, 쓰레기 처리, 건축, 수자원 또는 토지 자원 재활용 같은 환경 친화 프로젝트가 주된 대상이다. 일부에서는 환경과 관련한 첨단 정보통신(IT) 기술도 포함한다.

친환경 에너지 리서치 업체 뉴에너지 파이낸스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된 지구온난화 채권 누적액은 5800억달러(약 693조원)에 이른다. 세계 채권 시장 규모가 100조달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지구온난화 채권의 입지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성장세가 가파르다. 2012년 42억달러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가 지난해 1766억달러로 40배 넘게 뛰었다. 올해에도 최소 1700억~1800억달러어치가 더 팔릴 전망이다. EU(유럽연합)가 2015년 수립한 파리기후협약의 '2030 대기오염 물질 배출 목표'가 실행되면 유럽에서만 최소 1800억유로(약 240조원)가 더 필요하다.

투자 수익률도 전통 채권과 비슷

지구온난화 채권 시장의 작동 메커니즘은 일반적인 채권 시장과 같다. 현재 지구온난화 채권을 판매하는 국가는 세계은행이나 EU의 유럽투자은행(EIB) 등 초국적 금융 기구들을 포함해 약 50곳 수준이다. 미국은 지구온난화 채권의 최대 발행국이다. 일부 민간 기업들이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채권을 찍을 정도로 관련 시장이 활성화됐다. 모기지 채권 발행 거대 국영기업 패니메이가 지자체와 함께 하수 처리 시설 개선과 같은 인프라에 자금을 대는 채권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신흥국 가운데는 201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처음으로 지구온난화 채권을 찍었다. 그 후 유럽에서는 2016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프랑스와 벨기에, 아일랜드가 뒤따르며 채권 시장 규모를 넓히고 있다.

이렇게 발행한 채권은 연기금 등 각국 기관투자자와 보험사, 자산 매니저 등이 산다.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이 지구온난화 채권을 선호한다.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강조하는 유럽에서는 2013년 이후 지구온난화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 규모가 4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프랑스는 2015년 기관투자자들에게 투자 결정에서 환경적 요소를 얼마나 고려하는지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EU도 자산 매니저들에게 지속 가능성 조건을 투자 결정에 포함하라고 권고할 예정이다.

딱히 지구온난화 채권에 투자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낮은 것도 아니다. 블룸버그 바클레이스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시장의 지구온난화 채권 수익률은 0.34%였다. 유럽 전체 투자 등급 채권 수익률은 0.41%였다. 친환경적 사업에 앞장서 투자하는 기업은 대체로 이전 세대에 관련 기술을 선도하던 우량 기업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채권의 절대 다수는 투자 적격 등급에 해당하고, 이윤도 전통적 채권과 비슷하게 형성된다. 채권의 유통 가격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많은 지구온난화 채권 발행자는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들이 지구온난화 채권의 취지를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직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프로젝트'를 가려내는 공통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투자자들은 어떤 채권이 진짜 친환경적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최대 탄소 배출 국가이자 세계 2위 지구온난화 채권 발행국인 중국은 석탄 중심 화력발전소에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구온난화 채권을 활용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유해 가스 처리 시스템에 대한 법적 규제가 다른 국가에 비해 느슨한 점을 이용해 유럽에서는 사용 금지 처분을 받았을 시설을 친환경 설비로 둔갑시키는 식이다.

EU, 전 세계 공용 평가 기준 마련중

이 때문에 많은 기업 평가 기관은 자체적으로 지구온난화 채권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0년 처음으로 지구온난화 채권의 기준을 세운 '기후변화 채권 이니셔티브', 파리 소재 사회 책임 투자 연구 기관 '비제오 에이리스', 암스테르담 소재 '서스테이낼리틱스', 노르웨이 오슬로 소재 기후 연구 기관 '시세로'가 그 예다.

시세로는 친환경 정도를 녹색 농도에 따라 3가지로 분류해 투자자가 겉모습만 환경 친화적인 채권을 걸러낼 수 있도록 돕는다. '짙은 녹색(dark green)'을 부여하는 사업은 풍력에너지 등으로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이는 프로젝트다. 친환경 하이브리드 버스 등의 프로젝트에는 그다음 수준인 '보통 녹색(medium green)'을, 화석연료 인프라의 효율성을 높여 탄소 배출을 이전보다 줄이는 프로젝트에는 '옅은 녹색(light green)'을 준다.

최근에는 EU가 나서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원칙에 기반한 전 세계 공용의 '지구온난화 채권 기준'을 세우고 있다. 채권 발행을 통해 모은 자본을 어느 사업에 얼마나 쓰는지, 누가 어떻게 관리하는지, 투자자에게 어떤 형식으로 관련 내용을 보고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 세세하게 담길 전망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채권 발행자는 외부 기관의 감사와 경영 관련 의견을 연간 수차례에 걸쳐 받아야 하고, 분기별로 조달 자본을 어디에 쓰는지 구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국제표준협회(ISO)도 비슷한 지구온난화 채권 기준안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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