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rts

버핏의 열정, 멍거의 냉정

김기훈 경제부 부장
  • 0
  • 0
입력 2019.05.24 03:00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Editor's note]


김기훈 경제부 부장
김기훈 경제부 부장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매우 냉정하고 차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식 투자자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된 비결은 차가운 계산 덕이라고 짐작했다. 그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인생의 대부분에서 열정은 성공의 필수 요인이지만, 투자 세계에서 열정은 대재앙이 되기 쉽다"며 경계했다. 버핏도 이 가르침을 반복해 말해왔다.

하지만 2006년 5월 미국 오마하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장에서 지켜본 버핏은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두뇌 회전은 빨랐고, 입은 한번 열면 두뇌 회전의 속도를 따라가려고 계속 움직였다. 말을 급하게 하려다 보니 논리가 비약되는 부분도 많았다. 이듬해인 2007년 주총 후 열린 기자회견장에서도 그는 매우 열정적이었다. 숫자와 합리성, 비(非)인간성만큼이나 인간성, 인정, 비(非)합리성을 강조했다. 나는 열정적 추진력이 버핏의 강점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버핏의 말대로 투자의 세계에서 열정은 대재앙이 되기 쉽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60년째 그의 단짝인 여섯 살 위 친구 찰스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답이었다. 멍거는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주주총회와 기자회견 동안에 버핏의 옆에 앉아 버핏이 잘못 알아듣는 질문을 바로잡아 주고, 부족한 설명을 촌철살인의 발언으로 보완했다. 버핏은 자신의 답변이 끝나면 반드시 멍거에게 발언권을 넘겨 의사를 표시하도록 했다. 버핏의 말을 들으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멍거가 옆에서 한마디 꼭 집어 던지면 금세 버핏의 의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멍거가 '찬물'을 끼얹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버핏이 핀잔을 준다. "찰리(멍거의 애칭)는 경영대학원을 하루도 안 다녀본 사람이다." 멍거는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버핏은 "찰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가 듣지 않아도 계속 반복적으로 이야기했고, 그 말은 매우 논리적이어서 거부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멍거는 기자회견 단상에서는 냉정했지만 단 아래에서는 소탈했다. 한국 관심도 많았다. "LA 한인타운에 산 적이 있는데 한국 여학생이 공부를 잘하더라." "한국 기업 중 신세계와 포스코를 좋아한다." "한국 기업인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다."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성공 비결로 "조직의 관료화를 피하고, 사려 깊은 리더(버핏)가 오랫동안 혁신을 계속하면서 자기와 같은 성품의 사람들을 (계열사 CEO로) 끌어모은 덕분"이라고 버핏에게 공을 돌렸다. 반면 버핏은 "멍거가 회사 운영의 청사진을 짰고, 나는 그것을 실행했을 뿐"이라고 했다. 둘은 음양(陰陽)이 조화를 이룬 천생연분이었다.
위로가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