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View & Outlook

부메랑 효과 낼 트럼프의 화웨이 공격

팀 컬판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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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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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Trade]


팀 컬판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팀 컬판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정말 단지 협상용 카드였을까. 미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이자 스마트폰 제조업체 화웨이를 상대로 거래 금지 조치를 내린 것에 대해 적잖은 이들은 '무역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엄포용'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는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혹시 이전에 비슷한 곤경에 처했던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ZTE는 작년 이란 제재 조치 위반으로 미국 기업과 거래 금지라는 철퇴를 맞았는데 트럼프가 "사업을 조속히 재개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협력하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논란을 불렀다. "대통령이 전례 없이 법 집행에 개입했다" "트럼프가 개인 이익을 위해 ZTE를 봐준 것"이란 비판이 뒤따랐지만 결과적으로 ZTE는 경영 정상화를 꾀할 수 있었다.

벌써 인텔·마이크론 주가 일제히 급락

안타깝지만 화웨이는 ZTE와 다르다. 트럼프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외국산 통신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미 상무부는 화웨이와 그 계열사 70곳을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번 행정명령으로 화웨이는 미국 통신 장비 시장에 진출할 길이 봉쇄됐다. 이미 작년 정부 분야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같은 조치를 민간으로 확대한 것이다. 무역 전쟁을 휴전하자는 게 아니라 확전하는 셈이다.

사실 ZTE는 무역 전쟁의 희생양이 아니었다. 대북·대이란 제재를 위반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 것이다. 법적인 전제가 명확했다. 하지만 화웨이는 뭘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가 없다. 중국 정부와 화웨이도 미국이 ZTE와는 다르게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본인이 원한다면 언제든 중국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를 별 이유 없이 인질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중국 정부와 기업이 미국 의존도를 벗어나 완전한 기술적 독립을 시도하려 할 것이란 구상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시장이다. 중국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대부분에는 미국산 통신칩이 들어간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공장이기도 하다. 전 세계 스마트폰 3대 중 2대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앞으로 중국이 기술독립을 이뤄 미국 의존도를 줄인다면 걱정해야 하는 쪽은 화웨이가 아니라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 회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미국 기업 책임자다. 중국에 스마트폰 부품 공장을 세웠던 미국 기업들은 거래처를 잃고 줄지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해당 공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근로자들이야 현지 다른 업체에 재취업하면 되지만, 미국인 관리자들은 아마 빈손으로 귀국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기술 자급자족에 속도를 내면 미 증시 역시 폭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업체 인텔과 마이크론 주가는 일제히 급락하고 있다. 앞으로 최소 한 달여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중국 내에선 대미 강경파들이 나서 '미국 조치에 맞서 중국도 보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디지털 철의 장막'을 드리우기로 결정한 듯하다. 기술 냉전의 시대를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조만간 두 나라에서는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태세다. 지금으로선 제재가 속히 풀릴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 의견이 어서 들어맞기를 기대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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