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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득세하는 금융국수주의

페르디난도 지울리아노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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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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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페르디난도 지울리아노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니스트
페르디난도 지울리아노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니스트
올해 3월 초 공식적으로 시작된 독일 1위 은행 도이체방크와 2위 은행 코메르츠방크의 합병 논의는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무산됐다.

세계적인 금융 선진국 독일에서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금융기업에 코메르츠방크는 매력적인 매물이다.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와 네덜란드의 ING 같은 유럽 전역의 굵직한 은행들이 코메르츠방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승낙이 없으면 코메르츠방크 인수는 그저 희망 사항에 가깝다. 코메르츠방크를 인수하려면 독일 정부 지분 15.5%부터 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혹독한 어려움을 겪은 이후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국) 국가 전체의 금융 시장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은행연합'을 지지해왔다. 2014년 말 출범한 은행연합은 개별 국가를 넘어 유로존 차원에서 은행 전체를 감독하고 은행 예금에 대한 지급 보장을 해주는 기구를 말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내 은행을 감독하고, 다시 금융 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경우 바로 적용할 행동 규범을 갖췄다. 그러나 전체 회원국을 아우르는 예금 보험제도는 없다. 금융 위기에 취약한 국가의 은행들은 자국 금융 소비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은행연합은 이런 문제점에 대한 독일의 해답이다.

코메르츠방크가 다른 국가 은행에 팔린다면 은행연합 출범 이후 독일 은행을 다른 국가가 사들이는 사례로 남게 된다. 유로존 전체에 재정적 위험이 분산되고, 독일 금융계에 깊게 뿌리박힌 은행과 정부기관의 유착 관계를 줄이게 된다.

그러나 코메르츠방크 인수에는 거대한 장애물이 서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민족주의 성향의 극우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코메르츠방크 노동조합은 "이탈리아 은행이 우리와 합병하려면 많은 피가 쏟아질 것"이라며 외국 은행에 적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은 글로벌 투자은행이던 코메르츠방크를 "협동조합과 같은 지역 기반 대출 기관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하며 외국 금융기업에 넘길 수는 없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은행연합을 지지하던 독일이 당파적 이유로 외국인 인수에 대한 장벽을 높이는 것은 위선적인 사기극에 가깝다. 입찰 기업의 국적이 합병 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쓰이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단순한 민족주의가 합병의 향방을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 독일이 여전히 은행연합의 완성을 꿈꾼다면 국기 색깔이 다르다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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