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View & Outlook

다가오는 '기술 냉전' 시대

마누엘 무니스 스페인 IE 국제공공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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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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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Trade]

격화되는 미·중 기술 주도권 경쟁
세계적으로 파급 효과 커
'국가의 경제 개입' 막을 中 의지가 관건


마누엘 무니스 스페인 IE 국제공공학교 학장
마누엘 무니스 스페인 IE 국제공공학교 학장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대중 무역 전쟁의 배후에는 미국이 세계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이는 트럼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사이버 기술, 인공지능(AI), 항공산업 등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겠다는 중국의 '중국 제조 2025' 계획은 미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지정학적 위협으로까지 간주되고 있다. 미국의 통신 인프라와 지식 재산권은 물론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지위까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미국·유럽, 중국에 시장 개방할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화의 진전으로 지리적 요소가 세계시장에 더 이상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과 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르지 않게 분포돼 있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와 실리콘밸리, 중국 선전 등 몇몇 핵심 거점에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술과 인력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10억달러 가치를 지닌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이 주로 출현하는 지역이 어디인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숫자를 따져보면 중국과 미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계의 혁신 역량이 'G2'(미·중)로 빠르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규모를 키운 기업들로 생산성 증가가 집중되고 있다는 증거도 늘고 있다. 지난 10년을 살펴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규정한 '프런티어 기업'에 속하는 소수 기업이 세계 전체 생산성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반면 '느림보 기업'이라는 기업들은 전혀 생산성 향상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불균형으로 인해 세계 생산성은 전체적으로 둔화되는 듯하다. 기업 유형에 따른 생산성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기술 노하우와 혁신, 생산성 향상이 특정 국가에 집중된 세계에선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손실을 보게 되는 '제로섬' 경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각 국가가 지정학적 경쟁에 더 쉽게 빠지는 이유다.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중국 정부는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시민의 요구에 응답하고 공공 서비스를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시민들을 감시하기도 한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은 관료들이 복잡한 사회와 정치, 경제 체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도록 도움으로써 권위주의 정권에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는 다가올 분쟁에 대비해야 한다. 냉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술 주도권 경쟁은 전 세계적으로 파급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세계화에 대한 날카로운 위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세계화에 역행하려는 유혹은 세계시장을 해체하고, 각국을 데이터와 기술을 독점하려는 고립된 섬으로 후퇴시킬 것이다.

향후 미국과 유럽의 시장 개방 정책은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과연 유럽과 미국은 중국 기업들에 시장을 계속 개방할 것인가. 독점에 반대해온 서구 정부들은 세계시장을 중국 기업들에 내어줄 위험을 무릅쓰면서 자국의 기술 거대 기업들을 해체할 수 있을까?

'기술 냉전' 시대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선 중국의 의지가 중요하다. 경제를 자유화하고 국가의 경제 개입을 축소하려는 의지 말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이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동시에 정치 개혁 없이도 지배 구조가 더욱 공고해진다면 세계 각국 정부는 이를 참고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기술 냉전'은 경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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