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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함께 '타도 삼성' 대만, 내년 1월 깃발 올리나

남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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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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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 출마 선언한 '친중'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

"꿈 속에 女神이…" 떠돌던 출마설 공식화
반도체 中 이전 막는 現정권에 도전장

경제 회복 기대감에 차이잉원 총통보다 지지율 10~20% 높아


2017년 1월 대만 훙하이(鴻海)정밀공업(영어명 폭스콘) 신년회장. "총통(대통령) 출마 계획은 있으십니까?" 훙하이가 일본 반도체 업체 샤프 인수 후 계획을 묻는 질문이 쏟아지던 와중에 대만 현지 방송국 기자가 궈타이밍 훙하이 회장에게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궈 회장은 살짝 미소를 띤 채로 "아직 없다"고 했다. 그런데 뒤이어 그는 질문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약 30분 가까이 대만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만에서는 의사들이 시장(市長) 자리를 꿰찬다." "대만 정치인들은 기업을 더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이렇게 목청을 높이던 궈타이밍 회장이 지난달 중순 전격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궈 회장의 총통 출마는 대만 정·재계에서 이미 3~4년 전부터 떠돌던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행법상 총통이 되면 소유 자산을 위탁 단체에 맡겨야 하는 등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하기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궈 회장은 어떤 계기로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일까. 그는 "꿈속에 마쭈(媽祖·도교 신앙 속 바다의 여신)가 나타나 대만의 젊은이를 위해 일하라고 했다"는 다소 엉뚱한 이유를 들고 있다. 24년 연하인 그의 아내가 대선 출마를 거세게 말리며 일본 오사카로 가출해버리자 궈 회장은 "후궁(後宮)은 나랏일에 간섭하지 말라"며 오히려 야단을 쳤다.

대만 독립보다 親中 노선 지지

궈 회장의 대선 출마가 대만을 넘어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집권당인 민진당의 반중(反中) 노선이 그가 당선될 경우 친중(親中) 노선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출마를 위해 선택한 국민당은 주요 지지층이 보수층인 외성인(外省人·중국 본토 출신 한족)이다. 궈 회장 역시 외성인 출신이다. 경제정책을 우선순위로 두는 국민당과 외성인 보수층은 중국과의 대립이나 대만 독립 대신 경제 협력을 강조한다. 민진당과 국민당의 상반된 대중(對中) 정책은 선거 때마다 여야가 격론을 벌이는 핵심 이슈다.

훙하이가 중국 대륙에 거대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궈 회장의 친중 노선을 예고한다. 궈 회장은 대륙에 사업을 일구려 시진핑 국가주석과 여러 차례 개인 면담을 가질 정도로 두터운 친분 관계를 쌓았고, 2인자인 리커창 총리를 광저우 공장으로 데려와 시찰을 시켜줬던 적도 있다.

궈 회장은 기업인 시절엔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발언은 되도록 자제했다. 대신 '시장이 곧 나의 조국(市場就是我的祖國)'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진보 여당인 민진당이 최근 중국 정부와의 대립을 감수하고 대만 독립 구호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궈 회장은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거친 구호를 앞세우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기술 중국 이전 가능성

중국 공산당이 친중 성향의 국민당에 간절히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대만의 반도체 기술이다. 현재 차이잉원 정권은 트럼프 행정부와 발을 맞춰 반도체 등 자국 IT를 중국에 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제조 2025' 실행 계획 중 하나는 핵심 인력 유치 등을 통한 대만의 반도체 기술 흡수였는데, 반중 성향의 대만 정부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핵심 부품 수출 금지 등을 통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상황이라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 대만의 정권 교체는 정치적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궈 회장 역시 줄곧 '타도 삼성, 타도 한국'을 목표로 내세웠던 터라 중국과 연합군을 형성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도 이러한 배경 때문에 궈 회장의 출마를 상당히 반기는 분위기다. 중국 지도부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최근 트위터에 '궈타이밍이 차이잉원과 맞붙으면 후자가 질 가능성이 크다'고 썼다.

그러나 궈 회장이 섣불리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궈 회장이 미국 위스콘신에 LCD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인 데다, 만약 미국과 대만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면 애플이 정치적 위험을 피하려 아이폰 하도급 계약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훙하이의 매출은 2006년 9070억대만달러에서 지난해 5조3000억대만달러로 늘었는데, 매출 증가분 중 절반이 애플 아이폰 생산에 따른 것이다. 하도급 계약 중단은 사세가 기울 정도의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1년 넘게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궈 회장이 누구 편에 서든지 그의 사업에 미칠 영향은 상당하다. 훙하이의 조직 체계가 궈 회장의 카리스마 리더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기업 입장에선 큰 위험 요인이다. 일본 언론들은 훙하이가 3년 전 인수한 샤프의 회생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궈 회장의 결심은 이미 굳은 듯하다. 그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은퇴를 묻는 질문에 청나라를 60년간 장기 통치한 건륭제(乾隆帝)를 거론하면서 "건륭제가 퇴위 후에도 실권을 쥐고 있었던 것이 청나라가 번영에서 쇠락의 길로 빠졌던 최대 요인"이라며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일을 맡겨줘야 한다"고 했다.

경제 침체 탓에 당선 가능성 높아

그렇다면 궈 회장이 당선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현지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궈 회장의 지지율은 현재 차이잉원 현 총통의 지지율을 약 10~20%포인트 이상 앞선다. 대만 독립 강경파인 라이칭더 전 행정원장과 맞붙어도 약 10%포인트 격차를 보인다.

지지율이 고공 행진하는 주된 요인은 대만 갑부 1위 궈 회장이 경제를 되살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 덕분이다. 일부 평론가는 그를 '미국의 트럼프, 한국의 이명박'에 빗댄다. 지지율이 높아지자 마잉주 전 총통 등 국민당 원로들도 그의 출마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다.

대만 경제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정권 교체 가능성은 점차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대만 제2 도시로 불리는 가오슝(高雄)에서 한궈위 시장이 친중 정책을 앞세워 당선된 것은 최근 민심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한 시장은 선거 유세 때 "가오슝에 중국인 관광객을 더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중국과의 무역을 늘려 가오슝의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했다. 가오슝은 전통적인 민진당 텃밭으로 여겨져 충격이 컸다.

궈 회장의 출마에 여당 측은 "중국에 공장이 있는 경영자가 대만의 총통이 되면 중국에 복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대체로 민진당이 내세우는 '대만 독립' 구호에 호응하는 경향이 짙어 압승을 거두긴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만 총통 선거는 내년인 2020년 1월 실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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