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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거노믹스 이어 트럼프노믹스… 핵심은 '세율을 낮춰라'

유진우 기자 | 내슈빌(미국)=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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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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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역대 美 대통령이 참조한 '래퍼 곡선'의 아서 래퍼 전 USC 교수

'높은 세금은 경제성장을 저해' 공급주의 경제학 아버지
카터 때 물가 10.8%, 소득세율 최고 70%를
레이건 때 물가 3.8%, 세율 28%로 낮춰
영국 대처 총리도 자문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토대로 공급 경제학을 완성한 아서 래퍼(가운데) 전 USC 교수와 그가 정책 조언을 한 지도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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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와 규제 완화를 토대로 공급 경제학을 완성한 아서 래퍼(가운데) 전 USC 교수와 그가 정책 조언을 한 지도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 /블룸버그
미국의 닉슨·레이건·트럼프 대통령과 고어 부통령,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리고 영국의 대처 총리. 이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공급주의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제학자 아서 래퍼(Laffer·79) 전 USC(남가주대) 교수에게 경제 정책을 자문했다는 점이다. 레이건(1981~1989년 재임) 대통령은 특히 래퍼 의견을 대거 수용해 자신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래퍼는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거노믹스의 핵심 철학인 감세(減稅)를 정책에 대폭 반영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경제평론가 스티븐 무어와 함께 '트럼프노믹스' (Trumponomics)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미국 경제가 트럼프 덕분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찬사를 담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활시킨 레이거노믹스는 과연 지금 시대에 어떤 경제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한국 경제는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레이거노믹스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미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래퍼어소시에이츠를 찾았다. 래퍼가 1979년 세운 경제 컨설팅 회사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암모나이트 화석, 중국 청나라 시대 곰방대, 나이지리아 조각품 등 각종 유물이 실내를 채우고 있었다. 동행한 비서에게 "박물관도 아닌데 왜 이렇게 유물이 많나요"라고 묻자, 갑자기 "내가 살아 있는 화석이니까"라는 목소리가 저편에서 들렸다. 래퍼였다.

감세로 미국 경제 살린 레이거노믹스

레이건 대통령은 1970년대에 1~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경제 활력이 최악으로 떨어졌던 카터 행정부를 이어받았다. 카터 대통령 시절에 미국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10.8%에 달했고 소득세율은 최고 70% 수준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영화배우 시절 과도한 세금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자 세금 인하, 규제 완화, 긴축통화를 3대 기조로 경제정책을 펼쳤다. 래퍼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레이건 대통령을 도왔다.

래퍼는 "높은 세금은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는 인센티브(동기)에 의해 움직인다"면서 "사람들을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자극해 성장을 이뤄가는 게 경제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고(高)세율은 근로 의욕을 꺾기 때문에 성장의 적(敵)이란 얘기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런 래퍼 주장에 매료됐다. 1986년 최고 소득세율을 70%에서 28%까지 낮췄다. 법인세율은 48%에서 34%로 내렸다. 경제 성적표는 좋았다. 카터 정부 시절 평균 경제성장률은 2.7%였으나 레이건 정부 시절에는 3.5%로 높아졌다. 레이건 정부 시절 평균 물가 상승률(3.8%)은 카터 정부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과의 군비 경쟁으로 국가 부채를 크게 늘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반해 그가 감세 조치를 동원해 일군 민간경제 활성화 전략과, 군비 경쟁으로 소련을 몰락시키며 얻은 미국의 수퍼 파워 지위는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장기 호황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도 많다.

래퍼는 자신의 거주지도 세율에 따라 결정했다. 30여 년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거주하며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를 오가다가 10년 전 컨트리음악의 고향인 테네시주 내슈빌에 이사 왔다. 고향인 오하이오주도 아닌 테네시주를 선택한 이유를 물으니 "캘리포니아는 따뜻하고 아름다우나 미국에서 세율이 가장 높은 주(州) 중 하나다. 오하이오도 마찬가지. 세율이 낮은 테네시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주 중 하나"라고 답변했다.

트럼프 감세로 전 세계에 다시 부활

래퍼의 감세론은 전 세계적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법인세를 35%에서 21%로 대폭 낮추고 기업 투자에 최소 5년간 세금을 감면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감세 법안을 내놨다. 이로 인해 미국 기업과 개인 소비자들이 덜 내게 된 세금은 약 1600조원에 달한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간접세인 증치세(부가가치세)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법인세를 낮추었다. 반면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대기업 법인세를 높이고 개인소득세 공제 혜택을 축소하는 증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감세를 통한 경기 진작'이 세계적 흐름인 가운데 증세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득실을 곰곰이 생각해보기 위해 래퍼 전 교수를 인터뷰하고, 미·중·일·독 지도자들의 재정·조세 정책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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