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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좋다던 英 민영 교도소, 불시 방문했더니 '경악'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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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5.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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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Global Prism (17) 번창하는 英 교도소 운영업 논란


이철민 선임기자
이철민 선임기자
서유럽에서 처음 민영(民營) 교도소를 도입한 영국 사회가 교도소의 민간 관리·운영을 계속할 것이냐는 논쟁에 휩싸였다. 영국에는 교도소가 모두 123곳 있고, 이 중 16곳을 민간 기업이 운영한다. 정부와 계약해 아예 교도소부터 새로 짓거나, 계약을 맺고 기존 정부 운영 교도소를 넘겨받았다. 영국 재소자의 15%인 8만4000명이 이 민영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재소자 중 민영 교도소 수감 비율은 세계에서 호주 다음으로 높다. 한 해 40억파운드(약 6조1251억원)에 달하는 영국의 민영 교도소 시장을 영국의 G4S와 서코(Serco), 프랑스의 소덱소(Sodexo) 3사가 점유한다.

관리 비용 줄이려 민간에 운영 위탁

영국의 민영 교도소 시장은 1992년 보수당 정부의 존 메이저 총리가 "사회는 범죄를 좀 더 강력히 규탄하고, 이해심을 줄여야 한다"며 범죄 강력 대응을 주문하고, 이후 정부에서도 이 기조를 유지하면서 계속 커졌다. 더 많은 범죄자가 무기징역과 종신형 선고를 받았고, 재소자는 늘어났다. 작년 7월에 나온 영국 하원 보고서에 따르면 잉글랜드·웨일스의 수감자는 1990년과 2017년 사이에 배가 됐다. 인구 10만명당 재소자는 잉글랜드·웨일스가 142.4명, 스코틀랜드 136.5명으로 서부 유럽에서 제일 많다. 반면 영국의 많은 교도소는 19세기에 세워져 관리 비용이 많이 들고 2011년 이후 18곳이 문을 닫았다.

이 탓에 교도소가 비좁게 되자, 영국 정부는 관리의 효용성과 비용 절감 해법을 민간에서 찾게 됐다. 1992년 민간 기업 G4S가 처음으로 월즈(Wolds) 교도소의 운영 관리 계약을 맺었다. 런던에 본부를 둔 G4S는 90여 국의 공항·이민국 보호 시설에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 보안 기업이다. 민간 기업들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 재소자 관리와 혁신을 통해 인권유린이 없는 교도소 운영을 약속했다. 일부 민영 교도소는 재소자의 자존감을 높인다고 죄수복 대신 사복을 입게 했다. 기업들은 실제로 정부가 운영하던 때보다 11~15% 적은 돈으로 교도소를 운영하면서도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비용 절감의 많은 부분은 교도관 수 감축이었다. 잉글랜드·웨일스의 민영 교도소 인력은 2010년 4만5000명에서 2016년 3만10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①철창만 없으면 호텔 같은 웨일스의 파크 민영 교도소. ②침상에 편히 누워 스포츠 채널을 즐기는 리버풀의 알트코스 민영 교도소의 한 재소자. ③원룸 고시텔 분위기인 오크우드 민영 교도소 독방. ④스코틀랜드 에디웰 민영 교도소 재소자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간식 사진. ⑤복층 주택을 연상케 하는 에디웰 교도소의 로비 사진.
/데일리스타·가디언·에디웰 교도소 이미지 크게보기
①철창만 없으면 호텔 같은 웨일스의 파크 민영 교도소. ②침상에 편히 누워 스포츠 채널을 즐기는 리버풀의 알트코스 민영 교도소의 한 재소자. ③원룸 고시텔 분위기인 오크우드 민영 교도소 독방. ④스코틀랜드 에디웰 민영 교도소 재소자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간식 사진. ⑤복층 주택을 연상케 하는 에디웰 교도소의 로비 사진. /데일리스타·가디언·에디웰 교도소
일부 방만 운영에 영국 사회 충격

영국 사회는 작년 8월 정부의 사찰팀이 G4S의 버밍엄 민영 교도소를 불시 방문해 둘러본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G4S는 빅토리아 여왕 시절 세워진 이 교도소 운영권을 2011년 10월 정부에서 넘겨받았고, 전보다 98명 적은 교도관으로도 '효율적' 운영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창문 수백 장이 깨져 있었고, 복도 곳곳엔 피와 대소변, 쥐똥이 방치돼 있었다. 수감자들이 스파이스, 블랙 맘바 같은 합성 대마초 물질에 취해 좀비처럼 교도소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동안, 교도관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 방어에 급급했다. 사찰단 것을 포함해 차 9대가 불에 탔다. 피터 클라크 수석 교도소 검열관은 "숨만 쉬어도 마약에 취해 일찍 나와야 했다"고 작년 말 최종 보고서에 적었다.

일부 민영 교도소의 엉망인 실상이 드러난 것은 버밍엄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3년에도 G4S와 서코사가 보석으로 풀려난 재소자에 대한 전자 감시 장치 비용을 과대 청구한 게 들통났다. 2017년 2월 BBC방송의 한 잠복 취재 프로그램은 프랑스 기업 소덱소가 운영하는 잉글랜드 노섬벌랜드 교도소에서 마약에 취한 재소자들이 교도관들을 부려 먹고, 철조망은 뜯기고 경보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는 현장을 포착했다. 같은 달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스타는 암벽 등반 시설까지 갖춘 체육관, 전천후 축구장, 메뉴를 확인하고 특식도 주문할 수 있는 전자 키오스크(kiosk)까지 갖춘 '집보다 호화로운' 민영 교도소 내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일부 재소자는 한가롭게 누워서 평면 TV로 플레이스테이션4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올려 납세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폐지 논란 속에 "효율 높다" 반론 강해

영국 정부는 2022년까지 1만명을 추가로 수감할 수 있는 교도소 6곳을 신축하고, 먼저 완공되는 두 곳을 민영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버밍엄 보고서가 나오자, 노동당·영국독립당(UKIP)·녹색당 등 야당은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시할 때, 무질서와 관리 부실, 은폐의 씨앗이 뿌려질 수밖에 없다"며 일제히 민영 교도소 폐지를 요구했다. 제1 야당 노동당은 아예 2022년 총선에서 이기면 모든 계약을 끝내겠다고 기업들에 이미 통보했다. 심지어 대처·메이저 보수당 총리 정부에서 철도·전력·버스 산업의 공기업 민영화를 주도했던 이들까지 "자유 사회에서 자유의 박탈은 결코 민간 기업의 책임 아래 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영 교도소 옹호론자들은 "민간 기업이 교도소부터 지어서 운영한 경우엔 평가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최고 점수를 받은 교도소도 민영"이라며 "공영·민영 가릴 것 없이 기본적으로 매우 열악한 영국의 교도소 실태를 민영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영국 정부의 교도 행정 고위 관리였던 줄리언 리 베이는 일간지 가디언에 "민간 기업이 동력을 잃게 되면, 영국 교도소에선 다시 집단 잇속만 챙기는 교도 공무원 노조의 독점 폐해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리 스튜어트 법무부 교도 행정 차관은 "일부 민·공영 교도소가 영국에서 제일 좋은 점수를 받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원화가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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