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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났던 아들이 돌아와 확 바꿨다… 105년 된 료칸을 세계적 리조트로

가루이자와·도쿄(일본)=남민우 기자 |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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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4.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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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헤이세이 30년 불황' 뚫은 호시노 요시하루 호시노리조트 사장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한 시간 거리인 가루이자와는 한여름에도 선선한 기후, 풍요로운 자연과 더불어 일본 유명 인사들의 별장지로 유명하다. 호시노야가루이자와는 산 쪽에 있는 '야마로지', 강을 볼 수 있는 '미즈나미', 정원을 볼 수 있는 '니와로지' 등 77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 남민우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한 시간 거리인 가루이자와는 한여름에도 선선한 기후, 풍요로운 자연과 더불어 일본 유명 인사들의 별장지로 유명하다. 호시노야가루이자와는 산 쪽에 있는 '야마로지', 강을 볼 수 있는 '미즈나미', 정원을 볼 수 있는 '니와로지' 등 77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 남민우 기자
일본 경제 거품이 막 꺼지기 시작하던 1991년. 호시노온천 창업자 4세손 호시노 요시하루(星野佳路) 현 사장은 다시 본가를 찾았다. 대학 졸업 후 가업을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왔던 그가 전통적 료칸 운영 방식을 고집하던 부친과 의견 충돌을 겪고 6개월 만에 스스로 온천을 떠난 지 2년 반 만이었다.

1904년 개업한 호시노온천(호시노리조트의 옛 이름)은 당시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1980년대 거품 경제를 거치면서 일본 숙박업계는 유명 휴양지에 리조트·료칸을 비롯한 고급 숙박 시설을 우후죽순으로 세웠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면서 이런 과잉 투자가 악몽으로 되돌아왔다. 게다가 호텔 시장 개방 조치까지 취해지면서 그야말로 일본 숙박업계는 무한 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 나가노현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료칸(旅館·일본 전통 숙박 시설)을 고집하며 외길을 걸었던 가업(家業)도 풍전등화 신세에 몰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요시하루에게 구조 요청을 보낸 것이다. 31세에 사장에 오른 그는 가업을 찬찬히 되돌아봤다. 호시노온천은 역사는 깊지만 내실은 빈약했다. 화이부실(華而不實). 온천 서비스 핵심인 저녁 요리는 형편없었고, 직원들은 고객 서비스 정신이 없는 목탁 같았다. 내부 경쟁력은 무너져 가는데 누구도 쓴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업을 망가뜨리지만 말라"는 무기력한 당부만 남겼을 뿐이었다.

쓰러져가던 온천 한 채 家業을 세계로

호시노 사장은 그런 절체절명 환경에서 한 걸음씩 호시노온천 체질을 바꿔나갔다. 전통 료칸을 지킨다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본업을 다시 정의했다. '일본 최고 료칸·리조트 운영 전문 회사'가 그가 그린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사장 취임 후 초기 10년간은 잃어버린 호시노온천의 내공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사명도 호시노온천에서 호시노리조트로 바꿨다. 외관, 서비스, 직원, 시설의 개선에 전력투구했다. 기초 체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한 2000년대 초반부터 나가노, 시마네, 홋카이도 등 쇠락한 전국 각지 료칸과 리조트를 맡아 부활시키는 프로젝트를 광범위하게 펼쳤다. 그의 손이 닿은 료칸·리조트가 차례로 성황을 이뤘다. 업계에선 그를 '미다스의 손'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호시노온천을 모태로 세운 운영 전문 회사 호시노리조트의 매출은 최근 15년 새 10배 넘게 뛰었고, 온천 한 채에 불과했던 운영 시설은 38곳까지 늘어났다.

호시노 사장은 이 지난한 혁신을 일구면서 경영학 대가들의 통찰력을 한껏 활용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이력을 살려 평소 눈여겨보던 주요 경영학 이론을 온천·리조트 현장에 적용했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 전략'과 필립 코틀러의 '마케팅 경영', 얀 칼존의 '결정적 순간', 데이비드 아커의 '브랜드 자산 이론'까지 이론은 다양했다. 일본 경영계에선 그의 리더십 스타일을 '교과서 경영'이라 부른다. 남들은 그냥 강의실에서 듣고 공부한 다음 치워버렸을 법한 내용을 체화(體化)하고 조직에 전파하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헤이세이 30년 불황'은 기회였다"

호시노리조트의 부활은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을 관통하면서 후퇴하지 않고 전진했다는 데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방 강대국들이 일본 엔화 가치를 강제로 끌어올린 플라자 합의(1985년) 이후 일본 경제 체력은 약화됐다. 그러나 경제 체력이 튼튼하다고 착각한 일본 정책 당국자들은 소비세를 도입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긴축 정책을 시행했다.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시작된 헤이세이(平成) 30년 불황(1989~2018년)은 일본 경제의 암흑기였다. 말단 사원에서 사장까지 모두 불황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청춘을 보냈다. 도시바와 샤프를 비롯해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기술 기업들이 침체의 늪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고베제강이나 닛산자동차처럼 이익을 부풀리려 내부 자료를 조작한 기업까지 나오면서 일본이 자랑하는 모노즈쿠리(제조업) 정신이 무너졌다는 탄식도 쏟아졌다.

그러나 호시노리조트처럼 이 시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기업도 있다. 유니클로와 니토리, 소프트뱅크는 불황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낸 '디플레 극복팀'이었다. 요시가와 히로시(吉川洋)도쿄대 명예교수는 "불황을 극복하면서 단순한 가격 파괴 전략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화된 상품·서비스로 혁신을 일군 기업들이 살아남았다"고 분석했다. 호시노 사장도 "'잃어버린 30년'은 돌이켜보면 기회였다"고 회상한다. 호시노리조트가 보여준 일본식 저력과 '헤이세이 30년 불황'을 해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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