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Cover Story

육가공업체서 국민브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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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4.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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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스포츠용품 105년 윌슨의 모든 것

고기 도축 후 가죽 부산물로 테니스라켓 줄 만들어
1915년에 골프·축구·농구공에 운동복 제조
2차대전땐 청소년 대상 스포츠 용품 지원
1970년 펩시에 인수, 1989년에 핀란드 아머스포츠에 인수


윌슨의 회사 모토는 'More Win'이다. 윌슨 테니스 라켓을 쓰는 선수들이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횟수만 500회가 넘는다. 이처럼 윌슨은 구기 용품 분야에서 따라올 경쟁자가 없지만, 미국 밖에선 나이키나 아디다스만큼 인지도 높은 브랜드는 아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 마케팅보다 선수들을 후원하는 홍보 방식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업계 최초로 선수·코치 등으로 이뤄진 대규모 자문단을 운영하며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 전문성을 높이는 길을 택한 것이다.

윌슨의 105년 발전 역사도 철저히 제품 혁신에 기대어 왔다. 윌슨은 '슈바르츠실트&설즈버거'라는 육가공 업체에서 출발했다. 이 업체는 고기 도축 후 가죽 등 부산물을 활용하기 위해 '애슐랜드 제조 회사'를 차리고 1914년부터 테니스 라켓 줄, 바이올린 현 등을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구화와 테니스 라켓도 생산했다. 1915년 취임한 토머스 윌슨 사장 이름을 따 '토머스 E. 윌슨 컴퍼니'로 사명을 바꾼 뒤에는 골프공, 축구공, 농구공, 운동복까지 제품을 확대했다. 1920년대 들어 '시카고 스포츠 용품 회사'를 인수한 윌슨은 본격적으로 전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한다. 1931년 지금의 사명인 '윌슨 스포츠 용품 회사'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야구, 미식축구, 골프, 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과 협업해 스포츠 장비 혁신을 이끌었다.

윌슨은 제품 혁신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스포츠를 보급하고 참여를 장려하는 노력으로도 인정받아왔다. 스포츠 용품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가정과 학교에 스포츠가 보급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빛을 발했다. 전쟁 중 많은 스포츠 용품 생산 공장이 군수물자 생산 거점으로 활용됨에 따라 당시 스포츠 용품은 일반 시민이 살 엄두를 내지 못하게 값이 뛰었다. 윌슨은 마케팅 예산 전체를 청소년 스포츠 지원 사업에 투입했고 제품도 무상으로 기부했다. 윌슨은 1970년 펩시에 인수됐다가 1989년에는 핀란드의 아머스포츠 그룹에 인수되며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스포츠 보급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 다우즈 윌슨 회장은 "스포츠 활동에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연구도 있다"며 "우리는 특히 청소년들의 스포츠 참여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지원하고 있다. 이는 윌슨의 변하지 않는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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