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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암 진단이 강화되는데도 사망률이 줄지 않는 이유

김현철 코넬대 정책분석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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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4.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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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김현철 코넬대 정책분석학과 교수
김현철 코넬대 정책분석학과 교수
한국은 올 7월부터 폐암 검진을 국가가 해주는 세계 최초 나라가 된다. 이미 한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와 더불어 나라에서 국민 암 검진을 직접 해주는 세계 몇 안 되는 곳이다. 만 40세 이상 성인에게 위암, 유방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간암 검진을 제공했는데 여기에 폐암까지 추가했다. 암 검진 사업은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엔 무료, 나머지는 비용의 90%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한다. 연간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목표는 분명하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받게 해 소중한 생명을 구하려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조기 발견 많아

그런데 암 검진이 늘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암 검진은 특수한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 검진을 통해 실제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조기 발견이 생명을 구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검진만으론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이나 암이 천천히 진행되어 생명을 해칠 가능성이 낮은 경우 조기 발견해도 치료가 잘되지 않는 암이라면 암 검진은 무의미하다.

설사 특정 암 검진이 암 사망률을 낮춘다고 해도 국가가 직접 암 검진을 제공해야 할 명분으로는 부족하다. 민간 부문에서 이미 암 검진을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다면 정부가 정책 실패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설 필요가 없다.

필자는 한국 위암 및 유방암 검진 사업 효과를 분석한 바 있다. 그 결과, 국가 암 검진을 받은 사람들은 실제 위암과 유방암을 더 많이, 더 일찍 발견했다. 그런데 이렇게 암을 조기 발견했지만 전체 암 환자의 사망률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첫째 이유는 국민이 국가 암 검진 이외에 다른 경로로도 쉽게 암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 접근성이 높은 한국에선 국민은 속이 쓰린 것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방문하여 내시경을 받는다든지, 민간 병원 암 검진을 통해서 암을 조기에 발견한다. 국가가 안나서도 6개월 안에 이런 경로로 다 암을 발견하고 있었다. 약간 더 빨리 발견한다고 사망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 만큼 효과가 크지 않았던 셈이다.

다른 이유는 국가 암 검진 혜택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데 있다. 국가 암 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받은 사람들에 비해 암 종류에 따라 2~13배가량 암으로 죽을 확률이 높았다. 국가 암 검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건강에 더 신경 쓰고 투자한다. 결과적으로 암에 걸릴 확률도 낮다. 반면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암 검진이 필요한데 정작 이들은 관심이 없어 검진받지 않았고, 사망률이 높은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겐 정부 손길 안미쳐

이런 연구 결과는 국가가 선한 의도를 갖고 개입한다고 반드시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번에 새로 추가하는 폐암 검진도 효과는 미지수다. 폐암 검진 도입을 위해 복지부는 지난 2년간 흡연력이 30갑년(하루 2갑씩 15년 흡연) 이상 되는 폐암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벌였다. 수검자 1만3345명 중 69명이 폐암 확진됐고, 폐암 조기 발견율은 70%로 일반 폐암환자 조기 발견율 20%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국가 폐암 검진을 전국으로 확대하기엔 부족하다. 궁극적인 목표인 사망률 감소를 달성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 암 검진이 암을 조기 발견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민간에서 암 검진을 충분히 제공하거나, 검진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사망률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국가 폐암 검진은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정책 도입 근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다른 정책들에 비해 준비가 많이 된 편이다. 국가 폐암 검진은 비록 사망률을 낮추지는 못하더라도 폐암으로 인한 의료비는 감소시킬 가능성도 있다.

수많은 정책이 당위와 직관에 의해 최소한 실증적 근거도 없이 하향식으로 도입되고 논란을 야기하고 국가재정 낭비를 초래한다.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사회의 근본적인 환경은 놓아둔 채 시범사업조차 없이 도입한 출산장려금 정책은 그런 사례다. 한 번 도입한 정책 혜택은 되돌리기 어렵다. 끊임없이 재정만 허비하면서 효과도 보지 못하는 정책들을 떠올리면 그 기회비용이 아까울 따름이다. 반면 2008년 도입한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세부 내용에서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지만 그동안 민간이 제대로 담당하지 못했던 장기요양을 국가가 선도하여 국민 삶의 질을 높인 것으로 파악된다.

보건 의료와 교육 분야는 '시장의 실패'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흔히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분야로 인식된다. 이런 분야에서도'정부의 실패'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때론 정부가 개입을 자제하고 민간과 시장에 맡겨 두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정부가 보건의료 시장에 개입할 때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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