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Global Prism] (15) 34년 만에 재상장한 리바이스
독일 바이에른주 출신 유대계 이민자 레비 스트라우스가 1853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때 샌프란시스코에 연 직물점에서 시작한 리바이스 청바지는 사실상 미국 역사의 일부다. 이 가게가 20년 뒤 데님을 소재로 해 뜯어지기 쉬운 부분에는 구리 리벳을 박아 만든 최초의 작업복 '501'과 리바이스란 이름은 이후 전 세계 청바지의 대명사가 됐다. 리바이스는 작년 전 세계 매출 56억달러를 기록하고 미국 블루진 시장의 12.1%를 장악했다. 경쟁 브랜드인 '리(Lee)'나 '랭글러(Wrangler)'를 보유한 VF코프의 4.8%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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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스는 1971년에 처음 상장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의 경영 간섭이 심하자 1985년 "경영진이 장기 전략에 집중할 수 있게 하겠다"는 명분하에 사기업으로 재전환했다. 따라서 경영 수치가 견실한 이 회사가 34년 만에 다시 주식 시장을 찾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리바이스는 2000년대 들어 혹독한 시기를 보냈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운동(athletics)과 레저용(leisure)으로 함께 입을 수 있는 편안한 '애슬레저(athleisure)' 의류와 신축성이 뛰어난 니트로 된 요가(yoga)복에 몰리면서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 또 개인 디자이너들이 독특한 아이디어와 스타일을 담은 값싼 제품을 온라인과 노점에서 판매하고, 고급 디자이너들은 값비싼 청바지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리바이스를 양쪽에서 협공했다. 비누·위생·생활용품 회사인 프록터앤드갬블 출신의 찰스 V 버그(Bergh)가 2011년에 대표이사(CEO)로 취임하면서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서 혁신을 거듭해 회사를 가까스로 전환시켰다. 그래도 '청바지의 아이콘' 리바이스는 여전히 다방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리바이스는 매출의 3분의 2를 월마트·타깃과 같은 대형 유통 체인과 JC 페니·메이시(Macy's) 같은 백화점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이 대형 유통점들이 아마존의 전자 상거래에 타격을 받는 데다가, 이제 유통 체인들도 저마다 고유 브랜드의 저가 청바지를 만든다. 아마존에선 오프라인 매장에서와 같이 고객들의 눈길을 확 끌게 하는 대규모 세일이나 이벤트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기가 쉽지 않다. 리바이스도 미국 내 268곳을 비롯해 전 세계에 824곳의 전용 매장을 두고 있지만, 이 매장들과 자사 웹사이트를 통한 직접 판매 매출은 전체의 4%에 불과하다.
또 리바이스의 데님 소재 의류 판매는 남성용과 바지가 대부분을 차지해, 여성용 매출은 29%에 불과하다. 셔츠·상의·신발·액세서리류로 사업을 다각화하지만, 여전히 바지 매출이 전체 매출의 74%에 달한다. 중국 시장 매출은 전체의 3%에 그쳤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그만큼 사업을 확대할 공간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기업공개는 유망 기업을 인수하고 해외시장 개척 등을 위한 자금 마련이 첫째 목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71명에 달하는 창업자 스트라우스의 후손들도 배당금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해 재산을 다각적으로 운용하기를 원한다"고 보도했다. 스트라우스는 자녀가 없어, 기업을 4명의 조카와 친척들에게 물려줬다. 기업공개 이후에도 현재 리바이스 경영권을 쥐고 있는 하스(Haas) 가문이 주당 10표의 의결권을 갖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약 80%의 지배권을 행사하게 된다.
여성용 블루진 80%를 데님 소재로
리바이스의 재상장과 더불어 버그 CEO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흔히 '칩(Chip) 버그'라 불리는 그는 과도한 부채와 매출 저하로 2003년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리바이스를 회생시킨 인물이다. 버그 CEO는 작년에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멋진 음식점에 요가용 팬츠를 입고 오는 여성들을 보면 '데님이 훨씬 멋지게 어울릴 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이 편하다는 이유에서 애슬레저 의류를 선호하는 만큼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현재 리바이스 여성용 블루진의 80%는 신축적인 데님 소재로 만든다. 또 미국의 리바이스 전용 매장에선 소비자가 원하는 천 조각을 덧대고 도형이나 문구도 취향대로 프린트해 주는 맞춤형 제작 서비스를 한다.
버그는 작년 한 팟캐스트에서 "분명한 전략도 혁신도 없었고, 브랜드를 키우는 데 투자하지도 않았다. 소비자와 단절된 우리의 광고는 효과도 없었다"고 취임 초기를 회고했다. 그는 '리바이스를 입고 살라(Live in Levi's)'를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프로미식축구(NFL) 샌프란시스코 팀인 포티나이너스(49ers)의 홈 경기장 명명권을 사들여 '리바이스 스타디움'으로 바꿨다. 또 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려 샌프란시스코에 세운 '유레카 이노베이션 랩'에서 신축성이 뛰어난 데님을 개발했다.
처음엔 사람이 일일이 달라붙어 사포와 마모기로 직물을 문지르고 약품을 써서 만들었던, 곳곳이 해지고 색이 바랜 상태로 제작되는 블루진도 지금은 레이저로 장당 90초 만에 제작한다. 구멍 나고 해지고 접혀서 희게 변하는 부분을 모니터에서 도안한 뒤 이 모양대로 데님에 레이저를 쏘는 것이다. 구글과 함께 만든 트러커 재킷(Trucker Jacket)은 아예 인터넷 통신이 되는 데님 소재로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두 번 소매를 치면, 호주머니 속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앱이 갈 방향을 이어폰으로 알려준다. 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라는 음성 알림에 소매를 한 번 문지르면 이 통화를 무시하고 끊을 수도 있다.
옛 명성 되찾을 지는 미지수
버그는 기업공개 후에도 장기 전략 추진에 집중하고, 분기별 실적은 발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선 과연 리바이스가 기업을 현미경으로 해부 관찰하며 최신 실적만 따지는 주주들의 압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다. 또 아주 친숙하고 성숙한 기업이라는 게 성장의 한계가 되리라는 관측도 있다. 리바이스와는 대조적으로, 올해 미국에서 기업공개한 기업들의 평균 나이는 4년이었다.
그러나 리바이스의 생각은 다르다. 젠 세이(Sey) 수석마케팅책임자(CMO)는 "이전에 의류의 한 카테고리 리더로서 우리가 충분하게 신선함을 제공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젊은이들이 신발을 자랑하려고 발목을 드러내는 바지를 입는다면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성 중 80%는 리바이스를 갖고 있다"며 "나이키가 트렌드의 변덕스러움에 휘둘리지 않고 트렌드를 창출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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