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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에는 핵' 관철한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

양돈선 한반도선진화재단 독일연구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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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3.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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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Policy]


양돈선 한반도선진화재단 독일연구포럼 대표
양돈선 한반도선진화재단 독일연구포럼 대표
최근의 시국 상황을 관찰하다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국민이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정책 당국자의 우선순위는 경제보다 안보 문제인 듯하다. 그렇다고 북한 문제가 술술 풀려 경제적 탈출구가 되지도 못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대북 정책 방향이 한반도 통일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가. 필자는 독일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반도의 앞날은 북핵 때문에 계속 살얼음판이다. 반면 우리처럼 분단 경험을 겪었던 독일은 통일까지 이루고 지금은 경제적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이는 상당 부분 통일 전 서독의 분명하고 일관된 안보 정책 덕이다. 특히 헬무트 슈미트(Schmidt) 전 총리의 공이 컸다.

슈미트 총리는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SPD) 출신이다. 그의 총리 재임 시절은 구(舊)소련이 끊임없이 불안을 야기하던 동서 냉전 시대였다. 소련은 1976년 구동독과 동유럽에 중거리 핵미사일 'SS-20'을 배치하였다. 이 핵무기는 사거리가 5000㎞로 서독을 포함한 전 서유럽을 사정권에 뒀다. 핵탄두를 3개 탑재할 수 있는 공포의 무기였다.

당시 소련과 미국은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통해 서로를 겨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전략 무기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협정 내용에 서유럽은 빠져 있어 사실상 서유럽 전체가 무방비 상태에 있었다. 핵미사일이 언제 서독 상공에 떨어질지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거짓 '평화 쇼'는 재앙

슈미트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동분서주 고군분투했다. 소련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핵 감축을 요구했다. 동시에 서방 측에는 재무장(再武裝) 카드를 내밀었다. 그는 서방의 방위 기구인 나토(NATO)에 '이중 전략' 카드를 제의하였다. '이중 전략'이란 동유럽에 배치된 소련 핵무기가 폐기될 때까지는 서유럽에도 동일한 수준과 규모의 핵무기를 배치한다는 의미다.

나토는 슈미트의 제안을 받아들여 4년 내에 상호 금지에 이르지 못하면 서유럽에 '퍼싱 Ⅱ' 핵미사일을 전면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슈미트는 이를 서독 영토에 허용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퍼싱 Ⅱ'는 7분 만에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다.

이 '퍼싱 Ⅱ' 배치 계획은 서독 내 환경주의자, 반전·반핵 단체, 극좌 세력의 극렬한 반대를 불러왔다. 이들은 "소련과 동독은 핵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면서 슈미트를 전쟁광이라고 비난하고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슈미트는 자신의 정치 기반인 사민당 내에서도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이런 반전 분위기에 편승하여 1980년에는 당내 환경주의자와 평화주의자들이 녹색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슈미트는 흔들리지 않고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시종일관 지켰다. 그는 좌파 진영이 소홀히 했던 안보에 대해 좌우 이념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다. 결국 슈미트는 서독 국민의 강한 안보 의식, 자신에 대한 높은 신뢰도 등에 기반하여 1980년 총선에서 사민당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 후 1982년 우파인 기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어 헬무트 콜 총리가 1983년에 서독에 '퍼싱 Ⅱ'를 실전 배치했다. 그러자 그동안 꿈쩍도 안 하던 소련이 놀라 양보했다. 미국과 소련은 1987년 중거리핵미사일폐기협정(INF)을 체결했다. 이로써 서독을 포함한 서유럽은 소련의 핵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정한 평화는 겉치레 '평화 쇼'가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이다. 서독이 비록 자국 핵은 아니었지만 핵에는 핵으로 맞서 승리했다는 점은 북핵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경제적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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