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3년간 年 29% 수익, 월 스트리트 전설의 은퇴

김기훈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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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3.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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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김기훈 경제부 부장
김기훈 경제부 부장
20세기 최고의 주식 투자자는 피터 린치(Lynch·75)였다. 린치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뉴턴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하자 생계를 돌보던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스턴 대학 시절에 주식 투자를 시작, 투자금을 10배로 불린다. 아르바이트로 골프장 캐디를 하다가 금융회사 피델리티 간부의 캐디를 맡은 인연으로 졸업 후 피델리티 인턴 생활을 시작한다.

린치는 1977년 5월에 피델리티 마젤란 펀드의 운용을 맡았다. 이후 1990년 5월까지 13년간 연평균 29.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S&P 500지수보다 곱절의 수익을 매년 꾸준히 냈다. 그의 뛰어난 개인기 덕택에 가입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면서 마젤란 펀드 규모는 13년간 1800만달러에서 140억달러로 778배로 커졌다. 1977년에 1000달러를 투자한 사람은 13년 뒤 2만8000달러를 찾아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최대 규모의 뮤추얼펀드였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

린치는 "주식은 복권이 아니다. 배후에 있는 기업을 열심히 연구하라"고 항상 강조했다. 주가 변동은 무시하고 그 기업의 이익 지표에 집중했다.

직접 기업 재무제표를 분석해 '2분 요약' 형태로 연습했다. '숨은 진주'를 찾기 위해 미국 전역의 기업들을 찾아다녔다. 본사가 허름해 찾기 어려우면 '알뜰 경영' 신호로 봤다. 흑자 기업인데도 월스트리트 전문가가 몇 년 동안 찾아오지 않았으면 주식을 샀다. 기업 CEO를 인터뷰할 때는 항상 '가장 두려운 신생 업체가 어디인가'라고 물어보고 그 신생 업체에 투자했다. 그러면 뒤늦게 다른 기관투자자들이 따라와 주가를 10~20배씩 끌어올렸다. 일반인들도 주변 생활 정보를 잘 분석하면 일생에 2~3개 대박주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린치는 10여년간 1만5000종목 주식을 사고팔았다. 잡담을 싫어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주식 연구와 기업 탐방에 몰두했다. '발품' 덕에 전설이 됐다.

영웅의 은퇴는 갑자기 다가왔다. 아내와 세 딸(15·11·7세)이 차려준 46세 생일 파티가 계기였다. 아버지가 46세 때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에콰도르 GDP만 한 펀드를 굴리던 린치.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싶어졌다. 이듬해 펀드 운용에서 손을 뗐다.

린치에게 인생과 가족을 되돌아보게 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80세 넘어 장수한 펀드매니저는? 잡생각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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