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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경영대학원이 강의 중 느닷없이 페널티킥을 차는 까닭은

시카고=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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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3.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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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브 라잔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장, '8년 중 6년간 1위' 비결을 털어놓다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은 매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벤처 기업 창업 챌린지'를 벌인다. 학생들은 본인 지분이 최소 10% 이상인 회사를 세운 후 구체적인 제품을 만들어 사업성을 교수와 벤처 투자가로 구성된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자전거를 만든 학생이 본인의 제품을 심사위원과 동료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시카고 부스경영대학원 이미지 크게보기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은 매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벤처 기업 창업 챌린지'를 벌인다. 학생들은 본인 지분이 최소 10% 이상인 회사를 세운 후 구체적인 제품을 만들어 사업성을 교수와 벤처 투자가로 구성된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자전거를 만든 학생이 본인의 제품을 심사위원과 동료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시카고 부스경영대학원
광장 같은 대형 강의장 한가운데 작은 축구 골대가 놓여 있다. 교수가 학생 2명을 지명, 한 명은 키커, 한 명은 골키퍼로 선정한다. 자, 이제 키커는 공을 골대 오른쪽이나 왼쪽, 아니면 움직이는 골키퍼를 속이고 가운데로 찰지 결정해야 한다. '괴짜 경제학'으로 유명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스티븐 레빗(Levitt) 교수 강의실 풍경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공 차는 방향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뽑아내는 실전 경영법을 생생하게 가르치기 위해 독특한 수업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세계 톱 클래스 MBA로 오랫동안 명성을 쌓아온 시카고대 부스(Booth) 경영대학원은 최근 현장감 있는 수업을 강조하면서 밀레니얼 세대 입학생들 눈길을 잡고 있다. 부스 MBA는 이코노미스트 집계 세계 MBA 순위에서 최근 8년간 6차례 1위를 차지했다. 레빗 교수처럼 일상에서 벌어질 법한 문제를 놓고 학생들이 역할극 방식으로 소화하면서 토론한 다음, 해당 분야 전문가와 교수가 합세해 경영적 시사점을 이끌어내는 수업이 인기다. 두꺼운 케이스 스터디 과제물을 읽고 자리에 앉아 의견을 토론하던 전통적 MBA 강의실 모습과는 다른 지점이다.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이 세계 톱 랭킹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WEEKLY BIZ와 만난 라다브 라잔(Rajan)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장은 달라진 MBA 교육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MBA가 '돈 낭비'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그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학문적 지식을 가르치는 데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MBA는 궁극적으론 최고경영자(CEO)를 키우는 과정이지만 졸업생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직책은 CEO가 아니라 중간 관리자이죠. 중간 관리자라도 경제학에 대해 많이 알면 좋습니다. 그런데 최고 수준 MBA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사실 경제학은 다 잘 알고 들어와요. MBA는 이 학문적 지식을 조직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여낼지를 체득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CCO(최고소통담당자·Chief Communication Officer)로서 역량을 키워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라잔 원장은 저명한 회계학자로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부원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경영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소통하는 리더십을 중점 교육

―이상적인 CCO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일반 기업에서 CCO라고 하면 홍보 담당 임원을 말하지만, 우리는 리더십을 가진 관리자를 뜻하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 이 단어를 쓴다. CCO에게는 다른 직원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격적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큰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직원을 추스르고, 안정적으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첨단 기술을 이용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내용을 실제 경영에 접목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유능한 리더라도 모든 걸 혼자서 다 해낼 수는 없다. 리더가 방대한 지식과 이를 실전에 잘 적용하는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도 조직원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똑똑한 사람을 뽑는 것 못지않게 똑똑한 사람을 잘 다루는 게 중요하다. 시카고대 MBA 신입생은 입학하자마자 '리드(LEAD)'라는 리더십 프로그램을 듣는다. 고전적 방식을 통해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이성적인 그룹과, 과거 경험과 기분에 따라 결정하는 의사 결정자로 역할을 나눠 토론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협상과 관련한 실전 요령, 설득 비법, 대립 상황을 풀어가는 판단 능력을 두루 습득한다."

빅데이터 관련 수업이 인기

최근 시카고대 MBA에서 각광받는 수업은 빅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투자 정보를 뽑아내는 내용이다. IB(투자은행)와 자산운용사, VC(벤처캐피털) 같은 금융권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레빗이나 오스탄 굴스비(Goolsbee) 교수 수업에 열광하는 이유다.

―리더십은 전통적으로 중간 관리자의 핵심 능력으로 꼽혀왔지만, 빅데이터 분석 능력은 최근 부각되기 시작했다.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하는 시대다. 40년 전 시카고학파의 수리적(mathematical) 연구가 경제학의 중심이었다면 이제 계량 이론이나 빅데이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능력에 더해 해석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레빗 교수가 연출한 축구 장면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경영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레빗 교수 연구에 따르면 페널티킥을 할 때 골키퍼가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는 경우는 57%, 왼쪽은 41%였다. 그냥 가운데 서 있는 경우는 2%에 불과했다. 통계대로라면 가운데로 찼을 때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키커 중 83%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구석으로 찬다. 성공 확률은 가운데로 찼을 때보다 물론 낮다. 여기엔 '평판 압력'이 작용한다. 키커들은 가운데로 공을 찬다는 건 본인 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입증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가운데로 찼다가 가만히 서 있는 골키퍼 가슴에 공을 안겨주는 건 실패와 더불어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된다. 실패하더라도 구석을 노리면 적어도 '형편없는 키커'란 비난은 받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도박이나 다름없는 '스포츠 베팅'을 직접 해보기도 한다. 학생들은 교수가 가상으로 부여한 일정 자산을 역시 가상 스포츠 경기 베팅으로 불려야 한다. 특정 스포츠 경기 승패를 맞히려면 승률이 높은 팀에 대한 분석과 투자 환경·소식과 더불어 배짱과 직관, 본능을 갖춰야 한다. 이런 걸 직접 해보면서 경영적 사고방식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라잔 학장은 "특정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갖추는 건 기본이고, 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이런 수업을 통해 모니터에서 숫자로 나타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상황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응용하는지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스 스터디는 결국은 과거 사례고, 실제 활용은 별개 문제 아니냐"며 "직관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타 분야 교감 위해 건물에 미술품 전시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메인 빌딩 '하퍼센터'는 세계적 미술품을 자랑한다. 지하 1층부터 6층까지 제프 월, 폴 찬, 발레리 스노벡 같은 유명 현대 미술 작가와 신진 작가들 작품이 가득 걸려있다. 부스 경영대학원 차원에서 매년 큐레이터 4명과 콜렉터 1명을 전문가 위원회로 선정, 진열 작품을 엄선한다. 현재 보유 작품 수는 500여 점. 작가 86명 작품을 아트 바젤과 뉴욕 전시회, 미술 관련 엑스포에서 대학 예산으로 구매하거나 기증받았다. 경영과는 무관할 듯한 그림에 예산을 쏟고,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뭘까. 라잔 총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경영학은 다른 학문에서 고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즘 기업들 관심사는 빅데이터 같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인데, 앞으로 뛰어난 기업가들은 엔지니어, 의사처럼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혁신이 나오는데, 여러 학문을 폭넓고 깊게 접하는 사람이 유리하죠. 과거 경영학은 '회계'에 방점을 찍었지만, 앞으론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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