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View & Outlook

한국 경제 업그레이드 기회가 닫히고 있다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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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3.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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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을 되풀이할 나라는 어딜까. 경제학자들 눈에 유력한 후보는 한국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사실 한국이 일본 같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따른 물가 하락) 소용돌이에 빠질 확률은 높지 않다. 그동안 한국 경제 침체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은 번번이 실패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 위기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와 반등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한국이 '아시아판 아이슬란드'가 될 것이란 비관론도 나왔지만 빗나갔다.

20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양적 완화 축소 발표 이후 발생한 세계경제의 '긴축 발작' 여파에서도 한국은 인상적인 정책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보여준 이러한 체력은 수년간 경제정책 표류로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 늦기 전에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약속을 이행해야만 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이 경제 개혁보다 북한과 긴장 완화에 힘을 쏟은 것은 이해할 만한 선택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던 경제 공약을 희생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적 자원이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는 현상을 개선하고 스타트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를 후퇴시킬 수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벌이는 무역 전쟁도 한국에 큰 위협이다. 문 대통령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과감한 정책들을 펼쳤다면 트럼프의 관세 공격에 지금처럼 취약하진 않았을 것이다.

中·日·印도 개혁 느려 효과 안 나타나

한국 경제에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48개월 동안 청와대가 기업인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진정한 창조 경제를 구축했다면 한국은 지금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성들 경제활동을 장려하고, 규제를 완화하며,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었다면 생활수준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경제보다 대기업 챙기기에 적극적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도 역시 많다.

이러한 수년간 실책은 2019년 한국 경제를 어떤 상황에 몰아넣게 될까. 확실한 건 경제 체질을 혁신할 '기회의 문'이 생각보다 빠르게 닫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아시아 여러 나라 리더들이 성장 촉진과 임금 인상,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다. 2012년 말부터 일본 아베 총리,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개혁에 착수했다. 2014년부터 모디 인도 총리도 합세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개혁 속도가 너무 느려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무역 전쟁이 세계 여러 나라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는 지금 이 나라들이 모두 구시대적인 재정과 통화정책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관료주의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 지배 구조 개선, 혁신 기업 지원 등에 충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수년 후 경제학자들은 많은 국가가 경제의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아직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들에 맞설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가 성장 동력을 재정비하는 데 남은 재임 기간을 쏟는다면 한국은 '중진국 함정'을 극복할 수 있다. 3% 이상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빨리 성장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경제 구성원들이 부유해지는 방향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거대 기업들이 경제의 역동성을 질식시키고 정경 유착이 국가의 성장 유인을 약화시킨다면 경쟁을 방해하고 성장의 결과물을 독점하는 요인들을 없앨 필요가 있다.

대기업 자원을 스타트업으로 물꼬 터야

문 대통령은 2017년 말 연간 소득 3000억원을 초과하는 대기업들에 한해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고 저소득층의 소득 수준을 올리기 위해 최저임금도 인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고, 가족 소유 대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력하겠다는 태도로 입장을 선회했다. 국제 경쟁력 강화도 물론 중요한 과제이긴 하다. 하지만 기업 생태계 먹이사슬의 하부에 있는 기업이나 구성원들의 기회 또한 늘리는 노력과 병행해야 한다.

문 정부는 국민이 과거 정부에서 수차례 봐왔던 실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예컨대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에는 대기업을 견제하려 했지만 2014년 무렵 정책을 전환했다. 경제적 자원이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는 한국 사회 고질병을 개혁하지 못하고, 대신 대기업들에 경제성장을 이끌어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문 정부는 그때와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문 대통령은 경제의 근본 구조를 바꾸는 어려운 길을 택해야만 한다. 대기업에 집중된 자원을 빈곤한 스타트업들로 이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고임금 일자리를 만드는 새로운 산업들이 탄생할 수 있고 생산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가 많다. 그러나 '변화의 기회'는 문 정부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닫히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금 당장 경제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면 힘들어지는 건 그의 임기뿐만이 아니다. 미래의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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