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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기술 내줬다 발목 잡힌 유럽 고속철업체들

데이비드 피클링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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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2.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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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데이비드 피클링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피클링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TGV'로 이름을 알린 프랑스 고속전철 제조기업 알스톰은 2004년 중국에 객차 60량, 화물차 180량을 공급하는 10억유로 규모 계약을 맺었다. 1년 후 독일을 대표하는 고속전철 제조기업 지멘스도 중국에 시속 300km급 고속열차를 팔기로 했다. 당시 지멘스 최고경영자였던 클라우스 클라인펠트는 "앞으로 중국은 고속열차 부문 첨단 기술을 전수받을 것"이라며 "이번 계약은 독일과 중국 철도산업계가 장기적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불행히도 반만 맞았다. 알스톰과 지멘스의 계약에는 모두 '최신 관련 기술을 이전한다'는 조건이 들어 있었다. 유럽의 두 거대 기업이 쌓은 기술은 고스란히 중국 고속전철 제조 국영기업인 중궈난처(中國南車·CSR)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후 중궈난처는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역시 국영기업이었던 중궈베이처(中國北車·CNR)와 합병돼 세계 최대 고속전철 제조기업 '중궈중처(中國中車·CRRC)'로 재탄생했다.

지멘스가 기대했던 파트너십은 없었다. 새롭게 탄생한 CRRC는 글로벌 고속철도 시장에서 두 회사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뒤늦게 위기를 느낀 알스톰은 지멘스 철도사업부를 사들여 '그들이 자기 손으로 만든 괴물'에 맞서려 했다. 그러나 지난 6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알스톰의 지멘스 철도사업 부문 합병 계획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종 승인을 거부했다. 알스톰의 앙리 푸파르트 라파르주 최고경영자는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유럽에서 챔피언이 나오는 길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2004년과 2005년 계약에 따라 중국에서 고속전철을 조립하고 관련 노하우를 넘겨줘 오늘날 합병 계획이 나오도록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보자.

다른 산업계는 중국이 계약을 맺자고 할 때 알스톰이나 지멘스보다 더 신중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문은 고속전철업계와 비슷한 강도로 중국 당국의 규제를 받았지만, 가장 소중한 지식재산권만큼은 내주지 않고 끝까지 지켜냈다. 폴크스바겐이나 제너럴모터스는 현재 중국 시장에서 그 어느 국가보다 많은 매출을 올린다. 중국 합작회사에 기술을 전수하지만, 첨단 기술 대신 이미 업계에 널리 알려진 기술만 공유했기 때문이다.

알스톰과 지멘스는 여전히 글로벌 고속전철 시장을 이끌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억지로 몸집을 불려 '유럽 챔피언'으로 거듭나지 않아도 중국 기업에 대적할 분기별 실적을 거두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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