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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를 구글처럼 바꾸겠다" 큰 소리 치다… 무참하게 깨진 까닭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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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1.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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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까칠한 경영] (2) 기업의 변신은 당연한가?… 잘못하다간 '양복에 갓 쓴 꼴' 된다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학 책은 훌륭한 경영자 성공담으로 가득하다. 도전, 변화, 리더십 같은 미사여구로 포장한 내용을 외우다 보니 냉혹한 현실은 사라지고 "기업은 끝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늘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는 교훈만 남는다. 그러나 이는 종종 영악한 경영자가 개인적 이득을 벌이는 데 쓰인다. 망해야 할 회사가 이런저런 변명으로 연명하며 '좀비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2000년대 중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MS를 구글 같은 인터넷 서비스 기업(ISP)으로 변신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주가가 폭락하고 시가총액이 10조원 넘게 사라졌다. MS가 이미 자사 인터넷 서비스(MSN)에서 보여준 저조한 성과를 감안할 때 투자자들은 게이츠에게 "돈을 돌려달라. MS 대신 구글 같은 우량 인터넷 서비스 사업 회사에 직접 투자하겠다"고 답한 셈이다.

경영학 서적들은 기업의 변신을 경영자 도전과 혁신이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성과로 묘사한다. 하지만 애써 번 돈을 맡긴 투자자 입장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건설 회사가 호텔업에 진출해 변신에 나선다고 하자. 건설업에 호텔업이 더해지면 경영자로서 권력은 커진다. 광고나 매체 노출로 달라진 위상을 얻기도 하고 정부 부처나 금융회사 대접도 달라진다. 반면 처음 건설업에 돈을 줬던 투자자들은 이런 권한과 자위를 누리지 못한다. 새로 호텔업을 벌이면서 늘어난 부채와 신규 사업에 따른 위험 부담만 가중될 뿐이다. 때문에 자금을 빌려준 은행이 대출 약정(covenant)을 통해 호텔업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건설업이 안되니 호텔업으로 보완하겠다는 논리를 대지만, 호텔업이 좋아도 기존 경영자가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호텔 업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경영자로선 억울할 수 있다. 나름 성공할 자신과 비법이 있는데 몰라준다고 원망할 법도 하다. 그럼에도 투자를 받으려면 사업성과 경영역량을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

사업 전환에 성공한 3M·삼성·SK

일러스트=유현호 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유현호
전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도 찾아보면 적지 않다. 3M은 원래 미네소타 마이닝 앤드 매뉴팩처러링(Minesota Mining & Manufacturing)이란 이름을 가진 광산회사였다. 연마재 제조용 강옥을 채굴해 판매하다가 사포와 연마재, 이어 스카치테이프를 비롯한 각종 공업용 생활용 테이프와 포스트잇까지 전면적인 사업 전환을 성공시켰다.

닌텐도는 1889년 화투를 제조하는 개인 상점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가 전신이다. 화투에서 트럼프 카드로 계속 성공했지만 카드업만으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고 보고 택시업, 러브호텔, 유모차, 즉석밥까지 새로운 영역에 계속 도전했다. 수차례 좌절을 맛본 끝에 1963년 아이들 놀이기구에 진출, 오늘날 세계 게임기 강자 자리에 올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삼성은 1936년 협동정미소에서 출발했다. 이어 무역상과 제당사업을 거쳐 반도체 생산까지 이어갔다. SK는 1953년 직물공장에서 시작, 1980년 대한석유공사, 1994년 한국이동통신, 2012년 하이닉스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전혀 다른 회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전지전능한 '델피의 신탁'이 아니다. '닷컴 버블'처럼 특정 아이템이 잘 먹히는 '시장의 유행'이 있고, 투자수익률 압박에 쫓기기도 한다. 투자자도 누군가의 돈을 끌어다 굴리는 입장이므로 설사 경영자의 '변신 전략'을 이해해도 자기보다 더 사정을 모르는 전주(錢主)를 설득해야 한다. 가장 잘 아는 건 경영자이겠지만 사업 비밀을 공개할 수도 없고 시장이 제대로 평가해준다는 보장도 없으니 답답하다. 그렇지만 경영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포착해서 남다른 방법으로 실현해야 돈을 번다. 남들이 모를수록 그것을 할 줄 아는 경영자 가치는 높아진다. 다만 시장과 경영자의 다른 생각을 좁혀가는 설득의 과정이 어려울 뿐이다.

수많은 기업을 제한된 정보로 평가하는 자본시장에서 기업과 경영자는 나름의 정체성을 갖고 기억된다. 투자자들도 일정한 전문 영역과 투자 패턴을 갖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혀 다른 사업 분야로 변신을 꾀하는 경우 설득의 부담은 훨씬 커지게 된다.

구조조정, 경영자와 시장 뜻을 맞춰야

KT는 2000년 이후 본업(정보통신)에서 미디어 콘텐츠, 신용카드, 렌털서비스까지 다양한 사업을 펴고 있다. 미래를 위해 변신을 모색해온 결과라지만, 해외 투자자들은 "안정적으로 수입이 보장되는 통신서비스라서 투자했는데, 왜 엉뚱한 사업을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신규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별도 회사를 두고 새로 투자자를 모집한 다음 사업 정체성에 맞는 경영진을 선임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미국 방위산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는 1990년대 들어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이 끝나자 군수 분야 수요가 줄어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그러자 F-16을 생산하던 사업부를 15억3000만달러를 받고 록히드에 매각했다. 세스나는 텍스트론으로, 항공기와 미사일 사업은 맥도넬 더글러스와 휴즈에 넘겼다. 이를 통해 확보한 현금은 특별배당 형태로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매우 드문 일이다. 경영진이 미래 전망과 개편안을 놓고 이해 당사자 득실을 살펴보는 세밀한 보상 설계가 있었기 때문에 투자자와 이해조정이 가능했다.

정부, 기업 변신 지원할 때 잘 따져야

닌텐도와 3M은 성공적인 사업 전환을 구현한 기업 사례로 꼽힌다. 일본 도쿄 한 건물에 세워진 닌텐도 게임 캐릭터 수퍼마리오 선전 간판(윗쪽). 미 미네소타 세인트폴에 있는 3M 본사. / 블룸버그 이미지 크게보기
닌텐도와 3M은 성공적인 사업 전환을 구현한 기업 사례로 꼽힌다. 일본 도쿄 한 건물에 세워진 닌텐도 게임 캐릭터 수퍼마리오 선전 간판(윗쪽). 미 미네소타 세인트폴에 있는 3M 본사. / 블룸버그
"기업은 영속적 존재(Going Concern)로서 끝없는 혁신으로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는 문구가 경영학 입문서에 나온다. 하지만 '계속 기업'은 회계를 위한 가정일 뿐이고, 망할 회사는 정리해야 경제가 잘된다. 투자자와 시장은 생각하지 않고 기업의 변신을 무작정 찬양하는 정책으로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와 조선, 철강을 비롯한 국내 주력 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 지역경제와 고용이 달려 있다 보니 다양한 변신 노력이 거론된다. 이를 위해 "정부가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연하게 퍼진다." 하지만 그 변신에 대한 지원은 누구를 위한 건지 먼저 살펴야 한다. 기존 경영진이나 이들과 얽힌 이해관계자들 이익에만 충실한 변신은 아닌지.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유턴 기업 지원, 고용을 지켜보려는 가업 상속 지원도 마찬가지다.

세계 자금이 모이는 미국과 소수 대기업이 실패하면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이 작은 나라에서 어렵게 키워낸 기업들아 잘되길 기원하고 도우려 한다. 그러다보니 경쟁력을 잃은 회사들을 순리에 맞게 정리하는 일은 모두가 외면하는 금기가 되어 버렸다. 기업의 변신에 대한 무지한 기대가 나랏돈 먹는 좀비를 만들어서 경제의 돈줄이 막히면 손해는 누구 몫이 될까. 무지와 환상을 넘어 진정한 변신을 해내려면 먼저 시장의 냉정하고 가혹한 질문에 답해야한다. 그래야 일자리와 지역경제도 살려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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