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Cover Story

"단순 업무는 로봇이 하고, 사람은 생각하는 일을"

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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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12.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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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점점 정교해지는 로봇… 기술·산업·생활을 뒤흔든다

②산업의 변화
미히르 슈클라 '오토메이션 애니웨어' 대표


네덜란드 ING은행은 2009년 네덜란드 포스트은행을 흡수 합병할 당시 'RPA(Robot Process Automation·로봇 업무자동화)' 덕을 봤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고객과 상품에 대한 정보가 각기 다른 형태의 서류로 보관되어 있어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 걸로 예상했으나 RPA가 대신해준 것. 직원 업무 행태를 한 번 입력해주자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고객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일반 감사와 고객 인증 과정에 RPA를 도입해 이 분야 비용을 40% 가까이 절감하고, 걸리는 시간은 70% 줄였다. 미국 의료 기기 제조업체 보스턴 사이언티픽은 디지털 인보이스(송장) 발행 과정에 RPA를 이용, 인건비를 연간 24만달러 절약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로봇 시대

로봇은 일하고, 사람은 생각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RPA는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로봇을 의미한다. 사람이 정한 규칙에 따라 인터넷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컴퓨터 업무를 대신한다. 조회·비교·입력 등 단순 반복 작업에 주로 사용된다. 영업사원이 출근 직후 아침마다 영업사 관련 뉴스, 주가 등 각종 정보를 일일이 취합해 엑셀로 정리하는 데 1~2시간을 보내는 대신 RPA를 사용하면 10분 만에 자동으로 정리된 자료를 전달받을 수 있다.

기업 사무자동화는 RPA가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전사자원관리(ERP)에서 시작, 2000년대 초반 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BPM)·비즈니스프로세스아웃소싱(BPO)을 넘어 RPA 시대로 넘어왔다. 기업이 RPA에 주목하는 이유는 ERP나 BPO 등 기존 프로세스 대비 적은 투자로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때문이다. ERP나 타 IT 프로젝트는 시스템 구축에만 수개월이 걸린다. RPA는 몇 주 정도로 도입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저렴하다. 인간이 수기로 기입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줄여주는 점도 강점이다.

RPA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인 미국 오토메이션 애니웨어(Automation Anywhere) 미히르 슈클라(Shukla) CEO(최고경영자)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났다. 오토메이션 애니웨어는 전 세계 1100여 개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지난달 3억달러(약 3384억원)를 투자받았다. 지난 7월 시리즈A 투자까지 더하면 올해에만 5억5000만달러(약 6204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셈. 골드만삭스는 오토메이션 애니웨어의 기업가치가 약 18억달러(2조350억원)라고 평가했다. 오토메이션 애니웨어 측은 연 매출이 전년 대비 5배씩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5000여 개 기업 업무 자동화 가능

―오토메이션 애니웨어의 RPA는 어떤 소프트웨어인가.

"오토메이션 애니웨어의 기업용 플랫폼은 소프트웨어 로봇을 활용해 지출 전표 처리, 보고서 작성 등 각 산업 분야에서 반복하는 업무를 자동화해준다. 기업 재무·구매·인사·운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산업에 걸쳐 총 5000여 개 프로세스를 자동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은행 산업은 연간 평균 4만3000회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준법감시) 감독을 받는데, 이를 위한 서류 준비에 수십억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기존 데이터를 새로운 포맷으로 정리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RPA가 대신해 준다."

―자동차 회사 테슬라(Tesla)는 100% 제조 공정 자동화를 시도하면서 비용이 늘고, 제때 생산하지 못하기도 한다.

"인간 노동을 완전히 배제한 100% 자동화는 아직 시기상조다. 적당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완전 자동화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지만, 90% 자동화는 훌륭한 비용 감소 효과로 이어진다. 자동화 기기가 대체할 수 있는 일과 인간 노동자만의 고유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기사를 작성하는 것과 같은 창조적인 일은 아직까지 인간 노동자 고유 업무에 가깝다. 그러나 고객 이름, 주소, 원하는 상품 등 정형화된 형식으로 서류를 정리하는 일은 RPA가 대신할 수 있다."

―RPA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지진 않나.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노동자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할 때 사라진 일자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새롭게 창출된 직업이 훨씬 더 많았다. 역사적으로 기술은 늘 더 많은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디지털 사회가 열리며 우리 삶이 편해지긴 했지만, 일은 더 많이 하고 있지 않은가. 공유 자동차 우버(Uber)가 들어올 때만 해도 택시 산업이 궤멸될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오히려 2500만달러 규모 택시 산업을 13억달러로 성장시켰다. 신기술은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린다."

반발하던 노조, 이젠 "RPA 배우자"

―RPA로 어떤 신규 직업들이 생기나.

"로봇 소프트웨어 크리에이터, 관리자, 애널리스트 등이 나올 수 있다. 컴퓨터 등장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머, 서버 관리자 등이 생긴 것과 비슷하다. 아울러, 똑같은 보고서를 매일 작성하는 반복적인 단순 작업을 하던 사람들은 더 '사람다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은행 직원이 고객 주소를 파악하고 장부를 정리하는 대신 고객과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하는 일에 더 신경을 쏟을 수 있다."

―노동자들이 RPA 도입을 반대할 텐데.

"이미 유럽권의 강력한 노동조합을 경험했다. 물론 처음에는 거부반응이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노동조합이 노동자에게 '로봇 소프트웨어 만드는 법'을 배우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이력서에 'RPA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안다'는 한 줄이 구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도 저항이 있었지만, 이후 컴퓨터 학원이 생기고, 컴퓨터 활용 능력이 구직자 필수 조건이 되지 않았나. RPA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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