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Cover Story

"섬세한 유물 발굴까지 로봇이… 사람 혼자는 못하던 일 가능해져"

팰로앨토(미국)=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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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12.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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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점점 정교해지는 로봇… 기술·산업·생활을 뒤흔든다

①기술의 진보
오사마 카티브 美 스탠퍼드大 교수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툴롱에서 32㎞ 떨어진 지중해 해저. 오사마 카티브(Khatib) 미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로봇 잠수부 '오션원(Ocean One)'은 수심 100m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난파선 '라륀(La Lune·달)'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 라륀은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배였다. 당시 북아프리카 중서부 바르바리해안 전투에서 패한 뒤 돌아오던 이 배에는 숱한 보물과 예술품이 실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664년 침몰 이후 인간의 손길이 닿은 적이 없다. 인간이 잠수할 수 있는 해저 깊이는 40~50m가 최대치다.


오션원은 심해 고고학자들의 원격 안내에 따라 작은 꽃병 주변을 향해 팔을 뻗었다. 꽃병의 모양과 무게를 어림짐작해 보기 위해서다. 대략 감을 잡은 뒤 손가락을 안으로 내밀어 꽃병을 집어 들었다. 옆에 있는 회수용 바구니에 꽃병을 천천히 내려놓고 바구니 덮개를 닫았다. 배 안에서 오션원을 원격 조정하던 카티브 연구팀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호했다.

2016년 지중해 해저 유물 발굴의 한 장면이다. 오션원의 개발을 진행한 카티브 교수는 세계적인 로봇학자. 로봇이 만지는 물건의 표면 강도와 형태를 조종사가 똑같이 느낄 수 있는 '햅틱(haptic·촉각의) 기술'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카티브 교수는 "오션원은 수중에서 인간이 갖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제작된 잠수부 로봇"이라며 "가장 놀라운 점은 보트 위 조종사가 실제 오션원의 행동을 아바타처럼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오션원은 인간이 갈 수 없는 심해나 해난 사고, 오염 지역 등을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탠퍼드대 '게이츠' 컴퓨터공학 건물 1층 로봇학 연구실(Stanford Robotics Lab)에서 카티브 교수를 만났다.

인간의 촉각과 섬세함을 갖춘 로봇

―오션원의 활약이 대단했다.

"로봇 산업은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지금까지 로봇학은 다른 학과, 기술과 다소 동떨어진 학문으로 여겨졌는데, 모바일, 컴퓨팅, 재료공학, 인공지능(AI)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봇학도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대단한 기술 진보를 이루고 있다. 로봇은 사람들 일상에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고, 인간과 협업하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업무들을 해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봇 식당을 다녀왔다. 앞치마를 두른 아이언맨이 버거를 굽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실제로 컨베이어벨트식 기계라 실망했다.

"영화와 장난감 등으로 상상했던 로봇의 이미지 때문에 그렇다. 아마 지금까지 산업에서 로봇이라고 칭하는 다른 기계들도 만족스럽진 않을 것이다. 소설 속의 로봇이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사용된 것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1961년 도입한 유니메이트(Unimate)가 처음이었다. 사람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동력 장치가 개발되고, 금속 가공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 대신 일하는 로봇이 최초로 등장했다. 유니메이트는 당시 강한 힘과 정확성을 바탕으로 무거운 강철을 들어 올리는 등 위험한 공정을 척척 해내면서 산업계의 핵심 일꾼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유니메이트는 소프트웨어에 입력된 간단한 업무만 할 수 있는, 로봇의 형태만 갖춘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더 나아진 로봇들도 대부분 모든 행동을 프로그래밍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유니메이트를 왜 로봇이라고 불렀나.

"초기 공학자들은 이런 간단한 기계 뒤에 어떤 지능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환상을 갖곤 했다. 조셉 엥겔버그 박사가 유니메이트를 '로봇'이라고 칭한 이유는 SF 소설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안드로이드(인간의 외모를 빼닮은 로봇)를 기리기 위해서다."

마치 SF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모습을 가진 ‘오션원’(길이 150cm)은 인간이 내려갈 수 없는 심해를 자유자재로 조사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오션원에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과 물건을 잡고 무게를 느끼는 정교한 두 팔을 만들고, 몸통에는 컴퓨터와 배터리, 반동 추진 엔진을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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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SF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모습을 가진 ‘오션원’(길이 150cm)은 인간이 내려갈 수 없는 심해를 자유자재로 조사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오션원에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과 물건을 잡고 무게를 느끼는 정교한 두 팔을 만들고, 몸통에는 컴퓨터와 배터리, 반동 추진 엔진을 장착했다. /스탠퍼드대
AI와 접목하면 '생각하는 로봇' 탄생

―오션원은 지능을 가진 로봇인가.

"오션원은 일종의 아바타다. 인간이 안전하게 가상의 다이빙을 하도록 도와주는 대리 로봇이다. 오션원은 원래 깊은 홍해 바닷속에 있는 산호초를 연구하기 위해 개발됐다. 개발의 관건은 산호초가 손상되지 않도록 물건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사람과 같은 수준의 손놀림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개발팀은 기계형 집게가 아니라, 사람의 손가락을 구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로봇공학과 AI 기술을 결합했다."

―로봇이 지능을 가진 사례가 있나.

"AI 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작은 판단은 스스로 할 수 있다. 지금까지 AI와 로봇은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로봇은 힘세고 정교하지만, 세세하게 프로그래밍하지 않은 일은 못 했다. 일반적인 로봇 팔은 감각적인 부분이 부족해 1인치라도 다른 위치에 있는 물체는 집어 올리지 못한다. 또 로봇 팔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전혀 잡지 못했다. 예를 들어, 부드러운 솜뭉치와 딱딱한 돌덩어리가 있을 때 이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 개발된 로봇은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AI의 발달이 로봇 혁신의 열쇠인가.

"원래 로봇학 자체가 특정 과에 소속되지 않는다. 기계공학, 전기공학, 컴퓨터공학, 심지어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심리학까지 협업이 요구된다. 그런데 최근 로봇학계에 큰 도약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로만 여겨졌던 로봇 몸체에 AI란 두뇌가 장착된 것이다. 이 방향대로라면 상상 속 '생각하는 로봇'이 가능해진다."

사무실에서 수심 100m 해저 표면 느껴

카티브 교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혈압측정기처럼 생긴 기기에 손을 넣어보라고 했다. 컴퓨터 화면에 해저 표면이 보이자, 울퉁불퉁하며 딱딱한 촉감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로봇이 만진 해저 표면의 촉각적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카티브 교수는 "지금 수심 100m 이상의 해저 표면을 만진 것"이라며 "해저는 인간이 갈 수 없는 위험한 장소이기 때문에 탐사가 불가능했지만, 인간의 모습을 본뜬 아바타형 로봇 덕분에 정확한 파악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로봇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해저 화면을 보면서 ‘오션원’을 조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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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 로봇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해저 화면을 보면서 ‘오션원’을 조종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음성인식 AI 스피커를 사용 중인데, 아직까진 AI 기술이 갈 길이 먼 것 같다.

"로봇 기술과 AI가 융합되면 AI도 혁명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물리적 본체에 AI를 결합하면 현실에서 시각 인지와 말하기, 길 안내까지 할 수 있다. 몸체를 갖게 된 AI는 더 많은 데이터와 실습 기회를 얻게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쇼핑몰에서 경비 로봇이 두 살배기 아이를 치어 다치게 한 사고가 있었다. 안전에 대한 우려는 없나.

"로봇은 분명히 크고, 무겁고 위험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로봇의 미래 트렌드 중 가장 확실한 건 로봇이 인간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점이다. 몇 년 안에 쇼핑몰, 수퍼마켓, 길거리 등에서 로봇을 흔하게 보게 될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다. 사고의 가능성을 아예 없애야 한다."

로봇 혼자 일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의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3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기계가 전 세계 6600만명의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며 "우편, 배달, 음식 서비스 등 직업은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로봇 식당 '크리에이터'는 "버거를 만드는 직원 연봉이 13만5000달러 수준인데, 버거 로봇을 사용하면 1년 안에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요리노동자조합은 지난 7월 '반(反)기계' 파업에 나섰다. 파업의 요지는 계약서에 '로봇에 의해 인간이 대체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 조합 측은 "직업을 개선하는 혁신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직업을 파괴하는 자동화는 반대한다"며 "요리업계는 인간의 손길을 지우지 않으면서 혁신할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봇 때문에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러다이트식 사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로봇은 분명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쉽게 하지만, 모든 인간이 하는 쉬운 일을 못 하기도 한다. 예컨대, 날계란을 손으로 깨는 일을 상상해보자. 인간 대부분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이 업무가 로봇에게는 너무나도 어렵다. 계란을 깨기 위해서는 손가락의 적당한 힘 조절과 스냅이 요구된다. 아울러, 로봇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로봇은 애초에 인간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화처럼 로봇이 혼자서 일하는 시대는 현재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로봇과 인간이 협업하게 되는가.

"그렇다. 오션원도 조종사가 해저 화면을 보면서 정확한 판단을 통해 지시를 내리는 일이 중요하다. 만약 기술이 더 발달한다 해도, 인간의 개입이 줄어드는 건 절대 아니다. 영화 아이언맨처럼 인간 잠수부가 오션원 슈트를 입고 직접 해저에 들어가는 일도 가능해진다. 로봇이 혼자 바닷속에 들어가서 독단적으로 일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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