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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도 중요하지만 '사진 찍고 싶으냐'가 더 중요"

유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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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11.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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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한국·홍콩 전문가가 보는 외식업 생존법
② 음식 메뉴 개발 - 노희영 YG푸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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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기자
"식음료 사업은 메뉴와 브랜드를 개발해야 하는 일이고, 소비자 취향은 급변하는 시대죠. 최대한 소비자 취향 파악하러 돌아다니고 밤새도록 어떻게 차별화해야 할지 고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 여전히 유행하는 건 다 직접 입고, 먹고, 보면서 매일 (트렌드를) 찾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 식음료 브랜딩 전문가로 꼽히는 노희영(55) YG푸즈 대표를 서울 YG리퍼블릭 센트럴시티점에서 만났다. 그의 별명 중 하나는 '식품업계 미다스의 손'. 오리온에선 '마켓오 브라우니'를 출시해 제과업계에 고급 과자 열풍을 일으켰고, CJ그룹에선 브랜드 전략 고문으로 투썸플레이스·빕스 등 외식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재단장하고, 계절밥상과 제일제면소 등 한식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CJ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은 '비비고 만두'도 그의 작품이다. 이후에는 KFC의 핵심 메뉴인 징거버거를 고급화한 '마이징거버거'를 출시해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아워홈과 손잡고 인천공항에 푸드코트인 푸드엠파이어를 선보였다.

식음료 대기업에서 연달아 홈런을 날린 그가 음식료 대기업이 아닌, 국내 3대 연예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았다. 노 대표는 "국내 요식업 시장은 포화 상태"라며 "K팝 등 문화 콘텐츠를 접목해 해외 요식업 시장에 진출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설명했다.

유행하는 것 다 체험

―요즘 젊은 층은 해외 경험도 풍부하고 음식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까다로워진 소비자 취향은 어떻게 포착하나.

"유행하는 건 직접 다 경험해본다. 매일 KOBIS(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통계에서 1일 관객 수를 확인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텔레비전 방송도 웬만한 프로그램 시청률은 다 안다. 호기심이 많기도 하다. 개봉하는 영화는 평이 좋든 안 좋든 일단 다 본다. 어느 집 식당이 잘되면 너무 궁금해서 안 가보면 온종일 불안하다. 나랑 어울리지 않아도 (패션 브랜드인) 베트멍이나 발렌시아가가 유행하면 그걸 사 입어보지 않으면 못 참는다. 소비자가 뭘 좋아하는지 사람들이 요즘 왜 이런 걸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건데, 이런 게 (나에게는) 세상을 보는 눈 같다. 지금은 '이 음식이 맛있게 보이느냐' '사진을 찍고 싶으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음식의 맛이 좋은 건 기본 조건이다. 그래서 음식 맛 외에도 오감을 만족하는 음식 외적인 디자인적 요소가 중요해졌다. 나 역시 소셜미디어를 많이 참고한다."

―성공적 식음료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 수 있나.

"모든 답은 시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잘 팔리는 걸 어떻게 더 잘 팔리게 만들까' 이게 핵심이다. '마켓오 브라우니'가 그렇게 탄생한 거다. 일단 오리온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 즉 과자 시장 자료를 봤다. 한국 제과 시장에서 과자 종류별로 판매 상위 20위를 쭉 보니까 새우깡이랑 포카칩이 제일 잘 팔리더라. 그다음으로 칙촉, 초코칩쿠키 같은 초콜릿 들어간 쿠키가 1위다. 그리고 부가 재료가 없는 에이스, 참크래커가 잘 팔리고. '초코칩 쿠키를 좋아하는구나. 그럼 이걸 조금 색다르게 만들면 어떨까' 하고 떠올린 아이템이 브라우니다. 공장식 생산에 대한 지식은 없었으니 오리온 제품 개발팀 담당자들의 힘을 빌렸다."

소비자의 혀를 주시

―마켓오는 '고급 과자' 유행을 이끈 제품이다. 가격 저항은 어떻게 극복했나.

"(브라우니를 출시한 2008년) 당시 초코파이가 개당 200원쯤 할 때다. 초코파이 3분의 1 크기인 마켓오 브라우니가 개당 700원이었으니 10배 정도 비싼 셈이었다. 다들 망할 거라고 했다. 브라우니는 비싸다, 워터크래커는 싱겁다, 영업 사원들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가 물건을 살 때를 생각해보니 신문 광고보다 마트에서 시식 권하는 아주머니 영향력이 더 큰 것 같더라. 그래서 전국 오리온 판매 사원을 찾아가 식사를 대접했다. 마침 그 즈음 멜라민 파동이 터지면서 과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급증했다. '마켓오는 합성 첨가물이 없는 차원이 다른 과자'라고 마트에서 영업하게 했고, 그게 통했다.

그다음엔 마케팅 전략을 고민했다. 초콜릿 과자를 언제 먹으면 가장 맛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랑 먹었을 때 아니겠나. 그 당시 아이돌그룹 빅뱅이 막 유명해졌다. 그래서 YG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가서 빅뱅 콘서트장에서 관객들에게 브라우니를 하나씩 공짜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좋아하는 가수를 보면서 과자를 먹으면 어떻겠나.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새로운 음식 메뉴를 개발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요소는 뭔가.

"소비자가 뭘 좋아하느냐다. (메뉴 개발) 직원을 해외 맛있는 곳에 데려가고, 똑같이 만들어 보라고 해도 그대로 잘 안 된다. 윤리적인 이유보다 그 나라에서 맛있는 음식과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김치나 된장찌개 같은 (간이) 센 음식에 익숙한 혀로 일본 가이세키(懷石·제철 식재료를 쓴 일본의 연회용 정식) 요리를 처음 먹으면 맛이 별로 없다. 일본에 가서 처음 하루이틀 동안은 일식이 심심하게 느껴지지 않나. 며칠 지나 혀가 (담백한 맛에) 익숙해지면 일본 요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그러니 일식 본연의 맛으로 한국에 들어오면 (식당이) 어렵다. 된장찌개랑 싸워야 하니까."

메뉴로 식당 정체성 각인

―식당마다 알맞은 메뉴를 구성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한마디로 메뉴판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영업 전문가들이 실수하는 대목이 판매량에 근거해 메뉴를 조정하는 것이다. 잘 팔리는 음식만 메뉴판에 있다고 장사가 잘되느냐? 아니다. 이른바 '호객 행위 하는 메뉴'도 있어야 된다. 식당에 대한 평가를 높이거나 콘셉트를 잘 나타내는 메뉴가 있어야 한다. 베이징덕을 주문하지 않더라도, 베이징덕이 메뉴판에 있으면 그 중식당이 고급이라고 느끼는 것과 같다. YG리퍼블릭 내 카페인 '쓰리버즈(3 Birds)' 메뉴 중 슈퍼샐러드는 사실 제일 잘 팔리는 메뉴는 아니다. 그런데 이건 내가 메뉴판에서 절대 못 빼게 한다.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쓰리버즈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어떤 메뉴는 호불호가 갈린다. 여자 고객들은 엄청 좋아하는데, 남자 손님들은 맛없다는 메뉴가 있다. 그런 메뉴를 꼭 넣어야 한다. 좋아하는 그 메뉴 때문에 매장으로 오는 여자 손님이 반드시 있고, 대개 그런 손님은 다른 친구나 애인, 가족을 데려온다. 절대 고르면 안 되는 게 '그냥저냥 괜찮네'라는 평을 받는 메뉴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고 꼭 먹지 않아도 되는 무난한 메뉴. 이 메뉴를 먹으러 찾아올 손님은 없다."

―음식점 창업이나 외식 경영에 대해 조언한다면.

"일단 말릴 거다. '밥집'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다음엔 일단 남의 밑에 들어가서 모든 걸 다 배우고 시작하라고 할 거다. 식음료 사업에서 아주 새로운 메뉴를 선보였을 때, 맛있으면 손님이 일단 한 번은 온다. 그런데 그런 손님은 또 다른 새로운 식당으로 가고, 늘 먹는 메뉴는 동네 단골 식당에서 먹는다. (소비자들에게) 안 먹던 새로운 음식을 먹이고, 그런 새로운 음식으로 식당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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