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View & Outlook

분배를 성장으로 포장한 이상한 구호 '소득 주도'

조성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0
  • 0
입력 2018.10.05 03:00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WEEKLY BIZ Column]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규제… 둘다 시장에 대한 개입
가장 우려스러운 건 비판적 목소리를 정치 공세로 모는 것


조성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조성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체감 경기가 어렵다 해도 우리 경제는 여전히 3% 안팎 성장은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전보다 행복하다고 느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국민들은 지금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 수준은 늘면서 무난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길 기대한다.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갑질'에 시달리지 않고 정당하게 대접받길 원한다. 그런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현 정부 구호가 '더불어 잘사는 대한민국'이다. 분배와 성장, 공정한 사회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꿈이다. 분배와 성장, 두 가지 목표가 양립 불가능한 건 물론 아니지만 동시에 달성하기란 경제학적으로 쉬운 과제는 아니다.

'더불어 잘사는 대한민국'이란 구호에는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 경제, 그리고 혁신 성장, 이 세가지 정책 방향이 포함된다. 공정 경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다. 혁신 성장에서 중요한 건 주체는 민간이고 정부가 보조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혁신을 주도하려는 순간, 지난 정부에서 결국 초라하게 끝난 '창조 경제' 실패 공식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사실 분배정책

공정과 혁신이라는 방향이 정해졌다면 나머지는 소득불평등 완화로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포장은 여전히 소득주도 '성장'이다. 내용을 뜯어 보면 결국 분배 형평성을 높이는 정책인데 마치 성장 정책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성장' 정책이라면 경제학자 관점에서 볼 때 누구의 소득을 어떻게 증대시켜 성장률을 얼마나 높일 수 있다는 건지, 지금까지 정책 당국 공식 입장, 설명 자료 등 어떤 걸 들여다봐도 납득할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소득주도 성장이란 이름 아래 맨 앞줄에 세운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규제다. 둘 다 시장에 대한 개입이며, 결과적으로 시장 논리에 따라 자원(임금과 노동시간)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경제 전체로 봤을 때 누군가는 이득을 보겠지만 누군가 그보다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보전해줄 수 있는 정책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복지 정책에 다름 아니다.

기업에 노동소득 증대 강요

이런 정책을 왜 성장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불필요한 비판을 자초하는지 더더욱 의아하다.

노동 소득 증대는 원래 정부가 기업에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가 개입해선 곤란하다. 백번 양보해서 정책 효과로 가처분소득이 늘었다고 하자.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국민들이 기계적으로 소비를 늘리고 이에 따른 승수효과가 발생할까. 미 연준 의장 후보로도 거론됐던 유명 경제학자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미국 금융위기 이후 공격적으로 시행한 세금 환원 정책으로 가처분 소득이 10%가량 늘었지만 국민들이 이를 주로 빚 갚는데 썼고, 소비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걸 입증했다. 정책으로 소득을 잠시 증가시킨다고 해서 소비가 늘지 않는다. 계속 소득이 늘어날 것이란 확신이 생겨야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주 52시간'도 고용확대 효과 없어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안타깝게도 한계 수준에 있는 국민들이다. 즉 최저임금 이하에도 일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실업자나 자영업자가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그래서 후유증이 깊다. 현실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은 명목 GDP 증가율에 연동한 수준이 적절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하다.

노동시간 규제도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규제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회사가 일자리를 늘리진 않기 때문이다. 그냥 기존 직원들 소득만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대다수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조금 늘더라도 소득 증대를 바란다. 노동시간 감소는 정책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해당자(노동자)들이 간절히 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입하는 게 바람직한 이유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정치적 공세나 신자유주의, 시장중심사고, 과거회귀론 등으로 폄하하고 촛불혁명에 반대하는 수구세력 논리로 일축한다는 데 있다. 더구나 지금 국민들이 소득 불평등에 대한 개선을 최우선으로 바라고 있는지 한번 물어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소득주도 성장'이란 구호라도 '소득불평등 완화 정책'으로 명확히 바꾸고 추진하는 게 정직한 태도다.

위로가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