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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오너 경영'

장대성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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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10.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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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의 생명은 돈이 아니고 신용"
빚지면서 공사 강행… 오너 아니면 못할 뚝심


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인 흙수저 출신이었다. 막노동, 쌀가게 자전거 배달부·주인을 거쳐 20대 후반 자동차 정비 업체 사장이 됐다. 이후 토건업으로 방향을 돌려 6·25전쟁 때 미 8군 공사를 맡으며 돈을 만졌다. 1953년엔 경북 고령교 공사를 수주했는데 자재와 임금 상승, 기후변화 등으로 고전, 공사비가 급증하자 직원들은 공사를 중단하자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사업자의 생명은 돈이 아니고 신용과 약속 준수"라면서 공사를 강행, 재산을 다 날리고 빚까지 지면서 완공했다. '오너 경영'이 아니면 진행할 수 없는 뚝심이었다.

이때 보여준 신뢰 때문에 1957년 내무부에서 역대 최대 공사인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현대건설에 맡겼다. 1965년엔 한국 최초 해외 건설 공사인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 3년 후 완공했다. 1975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예정가(20억달러)의 50%인 10억달러에 수주해 세계 건설업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10억달러는 한국 1년 국가 예산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조선업을 하라는 박정희 대통령 권고를 들었을 때도 배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세상일이란 길이 없으면 찾으면 되고 길을 못 찾으면 길을 만들어 가면 된다는 심정으로 나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 바클리 은행으로부터 배를 매수할 사람이 있으면 자금 4500만달러를 빌려준다고 해 그리스 해운 재벌 리바노스를 찾아갔다. 리바노스에게 조선소 부지 미포만 백사장 사진 1장만 보여주고, 배를 사준다면 영국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진에 있는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고 싼값에 좋은 배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했다. 리바노스는 정주영의 기개에 탄복, 26만t 유조선 2척을 7500만달러에 발주했다. 정주영은 2년 만에 조선소 건립과 선박 건조를 완성해 선박 2척을 선주에게 인도했다. 오너 경영만이 할 수 있는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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