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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 전쟁 승기 잡은 트럼프의 속셈

허윤 서강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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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9.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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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미래 먹거리中에 빼앗길 수 없다"
미국 기업의본토 회귀가 목표


허윤 서강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허윤 서강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버릇없이(spoiled) 자란 중국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다. 우리에겐 미·중 무역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별도 시간표가 없다. 이번 협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2일부터 이틀간 열린 미·중 차관급 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미·중은 이번 협상에서 140여개 미국의 대중(對中) 요구 항목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비공식 발언을 통해, 양국 대치 상황이 완화되는 시점에 전체 요구 항목의 약 3분의 2에 대하여 이행 혹은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협상 도중 양국 정부는 각각 160억달러어치의 상품에 대해 25% 관세 폭탄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왕서우원(王受文)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후속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서둘러 떠났다. 이로써 양국은 지금까지 각각 500억달러어치 상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그리고 미국이 추가로 2000억달러, 중국은 600억달러어치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전쟁 빨리 끝낼 이유 없어

트럼프로서는 서둘러 전쟁을 끝내야 할 이유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국내 지지층을 결집해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차기 대선을 승리로 이끌려면 외부의 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치르는 갈등은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희석할 가능성도 크다. 더 큰 이유는 경제다. 각종 경제 지표들의 기록적인 행진에 백악관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내친김에 시진핑을 무릎 꿇려 북한 비핵화에 대한 협조까지 강요할 기세다.

반면 베이징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직접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지도자는 여론 추이에 민감하다. 경제성장률 둔화와 독재 가능성에 대한 원성에 무역 전쟁 고통까지 겹친다면 대륙의 불만은 어느 한순간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할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의 진짜 속내는 과연 뭘까? 하버드대 로버트 로렌스 교수는 "트럼프는 무엇보다도 해외로 진출한 미국 기업들 본국 회귀(리쇼어링)를 강력하게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가격 100달러인 기계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기계 1대당 75달러어치 중간재를 한국에서 무관세로 수입했다. 이제 미국이 이 기계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자. 이는 중국에서 발생한 부가가치(25달러)에 100% 세금을 물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미친다. 즉, 중국이 사업하기 2배가 비싼 지역으로 변모하면서 외국 기업들은 현지 투자를 줄이거나 미루고 공장 이전을 검토하게 된다. 지난 7월 미국이 25% 관세를 처음 부과한 340억달러 중국산 제품 상당 부분은 외국 기업이 중국 현지에서 생산한 제품이었다.

멕시코도 좋은 예다. 8월 27일 타결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미국과 멕시코는 자동차의 북미산 부품조달 비율을 종전 62.5%에서 75%로 높여 원산지 요건을 강화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투자자-정부 제소제도(ISDS)를 약화시켰다. '미국 시장으로 수출을 원한다면 미국 영토에서 생산하라'는 트럼프 주장이 현실화되면서 멕시코에 전초 기지를 둔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중국제조 2025' 심각한 위협으로 여겨

트럼프의 또 다른 속내는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손보겠다는 데 있다. 백악관과 의회는 특히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미국 기술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워싱턴은 보조금과 기술이전 및 지재권을 둘러싼 중국 정부 불공정 행위 근절뿐만 아니라 미국의 미래 산업을 위협하는 중국식 산업정책의 근본적인 폐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반대 시각도 있다. 지금 선진국도 과거 산업 정책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중국제조 2025'에 대한 미국 불만은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일본·독일·한국 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개도국' 신분과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특수성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특별하고도 차별적인 대우'를 원한다면 난센스가 아닐까?

트럼프는 이미 적용하고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1974년 무역법 301조에 이어, 의회에서 권한을 대폭 강화한 대미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법과 국방수권법(2019 NDAA) 등 가능한 모든 국내법을 동원하여 실리콘밸리 첨단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고 중국의 기술굴기 저지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미·중 무역 전쟁은 이제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패권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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