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Cover Story

우아하게 날거나, 저렴하게 타거나… 두 마리 토끼 다 잡다

이위재 차장 | 유진우 기자 | 프랑크푸르트=유한빛 기자
  • 0
  • 0
입력 2018.08.18 03:00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Cover Story] 사상 최고 실적 낸 독일 루프트한자그룹 슈포어 회장 인터뷰


카르스텐 슈포어 루프트한자그룹 회장은 실적이 좋아서인지 말과 행동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루프트한자그룹은 프랑크푸르트, 뮌헨, 취리히, 빈 등 4곳을 허브공항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거점 공항들을 유기적으로 활용해 탑승객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루프트한자그룹 이미지 크게보기
카르스텐 슈포어 루프트한자그룹 회장은 실적이 좋아서인지 말과 행동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루프트한자그룹은 프랑크푸르트, 뮌헨, 취리히, 빈 등 4곳을 허브공항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거점 공항들을 유기적으로 활용해 탑승객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루프트한자그룹
항공 여행은 21세기 들어 황금기를 맞고 있다. 국제공항협회(ACI) 최신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항공 여객 수는 77억명(중복 집계·2016년 기준). 전년보다 6.5% 증가한 규모다. 중국·인도를 비롯한 신흥국 항공 여행이 급증한 효과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항공 여객 수가 15년마다 배로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시장을 쟁탈하기 위한 항공사 신구(新舊) 전쟁도 갈수록 불이 붙고 있다. 전통의 강호 북미·유럽 대형 항공사들에 맞서 에미레이트·카타르항공을 선봉으로 한 중동 항공사 공세, 그리고 가격 경쟁을 무기로 한 저비용 항공사의 약진은 항공운송 산업을 춘추전국시대로 바꿔놓고 있다.

한해 80억명이 항공기로 전세계 이동

그 격전의 현장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유럽 최대 항공사 자리를 놓치지 않는 독일 항공사가 있다. 1953년 독일 국영항공사에서 출발한 루프트한자(Lufthansa)다. 루프트한자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조사한 직원 수 기준 세계 최대 규모 항공사다. 현재 12만9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국내 최대인 대한항공(2만363명)의 6배가 넘는다. 다른 영역에서도 세계 톱 항공사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선 여객(세계 4위), 매출(5위), 순이익(5위), 항공기 보유 대수(10위) 등에서 항공업계 최강자로 손색이 없다. 루프트한자는 최근 들어 오스트리아항공과 스위스항공 등 유럽 중소 항공사들을 활발하게 인수합병(M&A)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항공사로 도약하기 위해 다시 날고 있다.

2014년 5월 취임한 카르스텐 슈포어(Spohr·52) 루프트한자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은 디지털 체계 도입과 기내 서비스 향상에 주력하면서 매년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매출은 이 기간 중 20% 가까이 늘었고, 순이익은 7배가량 급증했다. 지난해엔 유럽 항공사 중 유일하게 스카이트랙스 선정 5성급 서비스 항공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비결은 뭘까.

WEEKLY BIZ는 슈포어 회장을 프랑크푸르트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루프트한자그룹 건물 회장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본사는 쾰른에 있지만 지금은 사실상 프랑크푸르트로 본사 기능을 많이 옮긴 상태다.

전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그의 집무실은 창밖으로 활주로가 보였다. 자사 영업 현장(항공기 이착륙)을 책상에 앉아 지켜볼 수 있는 셈이다. 문을 열고 성큼성큼 나와 기자를 맞은 그는 입구가 작아 보일 만큼 장신이었다.

슈포어 회장은 "전 세계 모든 항공사가 점점 더 심한 성장통을 겪는 중"이라면서 대형 항공사들은 저비용 항공사와 경쟁, 인재 확보, 디지털화 등 다양한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흐름에 대처하기 위해 루프트한자도 그룹 내부를 '네트워크 항공사 부문'(대형 항공사) '지점 간 연결 항공사 부문'(LCC·저비용 항공사) '항공 서비스 부문'(정비·기내식 등)으로 쪼개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경쟁하고 협력하도록 조정했다.

요금·서비스 다양화, 디지털 강화로 승부수

슈포어 회장은 최근 항공업계에서 눈에 띄는 흐름에 대해 "고객이 기대하는 양상이 다양화하면서 이에 따라 서비스가 세분화하고 있고, 더 높은 수준의 디지털 시스템 도입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퍼스트 클래스는 시설·서비스가 더 고급화하고 있고, 저렴한 항공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늘면서 저비용 항공사도 약진 중이다. 이런 추세를 타고 루프트한자그룹 LCC인 유로윙스(Eurowings)는 서비스마다 개별 가격을 매겼다. 가방 1개도 추가 요금을 내는 기본요금제를 제공한다. 항공사들은 점차 부가 서비스를 추가하거나 뺄 수 있도록 하면서 요금과 서비스 선택지를 늘리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은 LCC뿐 아니라 FSC(Full Service Carrier·대형 항공사)도 비슷하다. 결국 LCC와 FSC 사업 모델이 수렴하는 셈이다.

디지털 가속화는 예약 창구와 스마트폰 앱 등 항공사와 탑승객 간 인터페이스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 시스템 정비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루프트한자는 디지털 친화적인 항공사로 꼽힌다. 앞으로 승무원 간 의사소통 방식, 운항 절차, 여행사와 협업 등 전 분야에서 디지털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한다는 게 슈포어 회장의 포부다.

올해 발표한 루프트한자 로고
올해 발표한 루프트한자 로고
항공업계 지각변동 사이에서도 세계 최대 항공사(직원 수 기준)를 놓치지 않고 있는 루프트한자그룹은 어떤 전략으로 변화에 대응하고 있을까. 카르스텐 슈포어(Spohr) 회장은 항공업계 역시 디지털화, 자동화 흐름에 맞춘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품질 향상과 비용 절감에도 디지털 기술 활용이 필수라는 의미다.

그는 "루프트한자는 고객들이 직접 예약·발권하기 쉽도록 시스템을 개선해 항공업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주인공"이라며 "창가석·복도석 같은 좌석 위치나 더 넓은 주위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자리 등 고객이 기내 서비스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서 (루프트한자) 웹사이트 등을 통한 직접 선택·구매 경험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프트한자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영향과 브뤼셀항공 인수 후유증 등이 겹치면서 2009년과 2011년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4년 전 슈포어 회장 취임 이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 지난해 매출 355억7900만유로(약 46조원), 순이익 23억6400만유로(약 3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남겼다. 인수·합병(M&A)이 줄을 잇는 가운데서도 구조조정 대신 기존 직원 일자리를 보장하는 노동자 친화형 M&A 전략을 고수했다. 지난 10년 동안 루프트한자그룹 직원 수는 10만8000여 명에서 12만9000여 명으로 20% 가까이 늘었다.

디지털로 비용 절감… 최신 기체 도입

루프트한자는 세계 최초로 장거리 노선에 인터넷 서비스를 도입한 항공사다. 슈포어 회장은 "최근에는 단거리 노선에도 기내 인터넷 서비스를 확대하는 중"이라면서 "모든 에어버스 기종 항공기 노선에는 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루프트한자는 탑승객에게 제공하는 신문·잡지도 전자책 형태로 바꿨다. 다양한 언어로 제공하는 읽을거리를 승객이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전자기기에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는 "수백, 수천 t에 달하는 종이 잡지나 신문을 비행기에 싣는 대신 좌석 등급과 노선에 따라 최대 10종까지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면서 "(출판물) 운반에 드는 비용과 항공 연료를 아낄 수 있고, 종이를 덜 쓰니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는 셈"이라면서 "가끔 잡지·신문이 동나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던 승객들도 이젠 언제든 원하는 출판물을 읽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저비용 항공 자회사, 성장 빨라

―취임 이후 실적이 매년 좋아졌다.

"지난해 루프트한자 활동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현대화(modernization)'다. 루프트한자는 (항공산업 컨설팅업체 스카이트랙스 선정 서비스 품질 조사에서) 별 5개를 받은 유럽 내 유일한 항공사이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고객들 기대치가 높다. 노사 협약을 갱신한 것도 현대화 작업의 하나다. 의사 결정 구조를 단순화한 것도 그런 취지다. 지금은 매니저 직급이 이사회까지 어떤 의견을 전달하는 데 상사 1명만 거치면 되도록 했다.

항공기도 현대화하고 있다. 신형 기체는 연료를 10~20% 덜 사용하고, 소음도 50% 적게 발생한다. 소음 감소는 유럽처럼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선 정말 중요한 요소다. 루프트한자는 에어버스 C 시리즈, A320 네오 등 이런 측면을 강화한 신형 기종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4년 전 출범한 저비용 항공사(LCC) 자회사 유로윙스는 어떤가.

"유로윙스는 다른 항공사와 경쟁 때문이 아닌, 급격한 성장 때문에 진통을 겪고 있다. 4년 전 출범했지만 유럽 내 LCC 중 라이언에어, 이지젯에 이은 3위로 올라섰다. 독일 국내선 점유율은 1위다. 지난해 독일 내 점유율 2위였던 에어베를린이 파산하면서, 항공 수요를 유로윙스가 메워야 해 부담이 가중됐다. 올겨울까지 200대, 내년 여름 210대까지 보유 항공기를 늘릴 예정이다.

그동안 수익성보단 매출·노선 증대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제 수익성 개선으로 방향을 전환하려 한다. IT 관련 투자를 통한 디지털화, 고객 관리 등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얼마 전 고객이 방문하고 싶은 도시를 조사, 6개월 안에 유로윙스 신규 노선으로 추가하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그렇게 추가된 취항지가 크로아티아다. 중장거리 노선도 점차 추가하게 될 거다. 고객 목소리를 듣고 이를 사업에 반영해나가는 건 정말 중요한 요소다."

항공 수요 늘면서 인력 부족 심각

―루프트한자그룹의 당면 과제는.

"전 세계 모든 항공사가 확장에 뛰어들고 있어 무한 경쟁 시대가 벌어지고 있다. 대륙별로 흩어진 항공사들이 세계 시장을 무대로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루프트한자그룹 역시 성장의 한계를 여러 분야에서 체감한다. 대표적인 게 조종사, 정비사, 항공기 기관사 등 핵심 인력 부족 문제다. 루프트한자그룹은 독일 내 고용 상위 5대 기업에 속하기 때문에 인력 수급에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지만, 항공여객업계 전반을 보면 자격을 갖춘 인재, 특히 조종사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공항 등 기반 시설의 수용 능력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보안검색대나 탑승 게이트 배정, 항공기 이착륙 배정 등이 빡빡한 데다, 항공관제사 같은 지상직 인력도 충분치 않다. 항공 편이 늘면서 상공이 붐벼 지연 출발·도착이 빈번해지는 것도 문제다.

항공기 수급도 충분치 않다. 새 기체를 원하는 항공사 주문이 밀리면서 양대 항공기 제조사(보잉·에어버스)가 주문을 인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항공기 엔진이나 부품 등도 부족하다. 한마디로 항공여객업계는 기반 시설과 자원 공급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기반 시설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계획인가.

"자구책을 고민하고 있다. 뮌헨공항 제2 터미널 절반을 루프트한자그룹이 투자해 소유한 것도 그런 의미다. 지상 기반 시설 일부라도 우리 스스로 통제해 (항공기 운항)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상공이나 항공 관제는 정부가 관할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한데 항공사들은 줄기차게 (대기권 체증)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한다.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전 세계 200여 공항 CEO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언할 기회가 있었는데, 공항 시설 등 인프라스트럭처 부족 문제를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항공연합체들이 정책적인 해결을 요구하며 함께 목소리를 내는 한편, 자체적으로 해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루프트한자그룹은 일반적으로 항공사들이 허브 공항 1개를 갖춘 것과 달리 프랑크푸르트, 뮌헨, 취리히, 빈 공항 등 4대 허브(hub·거점) 공항으로 운용한다. 공항 시설 수용 능력이 제한된 공항을 우회할 수 있고, 연결 편으로 환승하기 편리하도록 이착륙 일정을 조정하는 등 공항 시설을 루프트한자의 운항 일정에 최적화할 수 있다. 한국 승객이라면 프랑크푸르트공항으로 입국해 환승 편으로 뒤셀도르프로 갔다가, 귀국할 때는 뮌헨공항을 이용하는 식으로 동선을 효율적으로 짤 수 있는 구조다.

카르스텐 슈포어(오른쪽) 루프트한자그룹 회장이 지난 2015년 11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에어버스 A380기 도입 행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기종을 설명하고 있다. / 블룸버그 이미지 크게보기
카르스텐 슈포어(오른쪽) 루프트한자그룹 회장이 지난 2015년 11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에어버스 A380기 도입 행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기종을 설명하고 있다. / 블룸버그
조종사 면허 보유한 경영자

지난해 민영화 20주년을 맞은 루프트한자는 지난해 고질적인 문제였던 노사 갈등을 차분하게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한 협상 끝에 파업 없이 조종사 노동조합과 입금인상안을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루프트한자는 월급 인상과 처우 개선 등을 두고 조종사들이 반발하면서, 매년 항공편 지연과 결항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2016년엔 단체 행동으로 4600여 편이 결항했고, 승객 39만여 명이 불편을 겪었다. 파업으로 인한 손실만 해도 한 해 1억유로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노사 관계 개선은 슈포어 회장이 취임 이후 많은 공을 들인 사안 중 하나다. 슈포어 회장은 항공기 조종 자격증 보유자라 조종사 노조엔 이 점이 대화 물꼬를 트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항공사 경영에선 인사 관리가 곧 품질과 직결된다"면서 "직원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어느 순간에든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노사갈등 해소로 향후 전망 더 밝아

"취임 이후 3년 반 동안 조종사 노조와 관계를 개선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루프트한자는 오랜 기간 국영 기업이었기 때문에 민영화된 후에도 고용 계약 내용이 (시장 논리에 맞게) 변하지 않은 상태였죠. 현재는 경쟁과 자유 시장에 맞게 바꾸었습니다. 노조도 이런 변화에 동의했죠. 루프트한자그룹 내에서 루프트한자항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인데, 지난해를 기점으로 노사 갈등이 전기를 맞으면서 앞으로 그룹 전체 실적에 대한 전망이 더 밝아졌습니다."
위로가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