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Arts

길거리서 태어난 반항아, 미술계 주류가 되다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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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8.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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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의 Art Market] (9) 스트리트 아트


올해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선보인 스트리트 아트 작가 캐서린 베른하르트의 그라피티 스타일 작품. / 아트바젤·아트넷 이미지 크게보기
올해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선보인 스트리트 아트 작가 캐서린 베른하르트의 그라피티 스타일 작품. / 아트바젤·아트넷
요즘 미술 전시장이나 건물에 길거리에 낙서한 듯한 그림이나 조각이 설치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미술의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이런 미술은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라 불리는 공인된 장르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시장에서도 주류로 인정받고 있다. 길거리에 스프레이 등 손쉬운 재료로 자유분방하게 그리는 벽화로 시작한 작가들이 많아서'거리 미술'이나 '그라피티 아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장르는 원래 정치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색채가 강했다. 서구 세계에선 낙서나 벽화를 중심으로 비주류 미술로 배회하다 갤러리와 평론가들이 스트리트 아트를 시장으로 적극 끌고 들어오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화상(畵商)들은 인기를 얻은 거리 미술 작가들에게 컬렉터가 소장하기 쉬운 캔버스 크기 작품을 제작해달라고 주문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뱅크시 작품 ‘깨끗하게 관리하라’. / 아트바젤·아트넷
뱅크시 작품 ‘깨끗하게 관리하라’. / 아트바젤·아트넷
바스키아·해링이 선구자

소더비는 작년 12월 홍콩에서 '거리로 가져가라(Take it to the Streets)'란 제목으로 처음으로 스트리트 아트 전문 경매를 했다. 경매 회사들은 스트리트 아트를 '도시의 미술(Urban Art)'이라고 홍보하면서 수집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스트리트 아트의 선구자라면 1980년대 뉴욕에서 활동한 장-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이 '투 톱'으로 꼽힌다. 이들은 당시 상업적인 현대미술에 반기를 들고, 맨해튼 길거리와 지하철 벽에 낙서를 하면서 화려한 도시 뉴욕의 이면에 웅크린 그대로의 현실을 풍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급 미술계는 그들의 반항적인 미술을 상품화시켜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고, 이 두 예술가는 지금도 손꼽히는 비싼 작가 반열에 올랐다. 바스키아는 작년 한 해 동안 현대미술 작가들 중에서 경매 낙찰 총액이 가장 높았다. 가장 비싼 작품은 1억1050만달러(약 1247억원)에 팔렸다.

1980년대나 지금이나, 스트리트 아트는 팔팔하고 끼가 넘치는 바로 '그 시대의 정신'을 보여주고 기성세대에 맞서는 용기가 있다는 점 때문에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회 비판의 메시지도 자주 담는다.

영국 현대 스트리트 아트 중 가장 유명한 뱅크시(Banksy)는 187만달러에 낙찰된 '깨끗하게 관리하라(Keep It Spotless)'란 작품에서 영국 대가 데이미언 허스트(Hirst)의 그림을 훼손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뱅크시는 관객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내미는 귀족 초상화도 그렸고, 런던의 상징인 빨간 공중전화 부스를 반 토막 낸 설치 작품도 작업했다. 뱅크시란 이름도 사실 가명이며 정확한 정체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미술품 경매에서도 인기 좋아


아트프라이스닷컴(artprice.com)은 작년 중반에 '스트리트 아트의 인기'라는 보고서를 내고, 2016년 7월부터 2017년 6월까지 경매에서 팔린 작품의 '양'이 가장 많은 현대미술 작가 10명 중 스트리트 아트 작가가 4명이나 들어간 점을 강조했다. 이 네 명은 키스 해링, 셰퍼드 페어리, 뱅크시, 커스. 이들의 상업적인 성공은 스트리트 아트가 시장에서 자리매김을 했고 컬렉터들에게 인기라는 현실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했다. 미국에서 2008년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 포스터를 그려 유명해진 셰퍼드 페어리(Fairey)는 2012년부터 5년 동안 경매 낙찰 총액도 두 배로 증가했다.

이호숙 미술 시장 애널리스트는 "기업이나 공공건물에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보이기 위해 스트리트 아트 작품을 많이 설치하게 된 것도 시장에서 이들의 입지가 강화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스트리트 아트 작가들은 미술 전문가보다는 대중에게 먼저 사랑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이 당당하게 시장의 주류가 된 걸 보면 '그들만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미술 시장에서도 이젠 대중의 파워가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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