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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 몰고올 '기업 승계' 충격, 일자리와 얽혀있다

최선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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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3.2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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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독일은 기업승계 거래소 운영해 정부가 지원
고령의 창업자에게 기업 번창 의지 불태울 수 있게 해야


최선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최선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정부에서 여러 가지 대책이 나오고 있다. 정년 연장이나 출산 장려 등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일자리와 소득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기업의 승계 문제이다. 기업 승계란 현 경영자의 뒤를 이어 오너 가족이나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원활하게 경영하도록 하는 인수 작업을 말한다.

우리는 창업주나 현 경영자의 고령화가 몰고 올 파장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거기까지는 관심을 둘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면한 일자리 창출의 긴급성을 감안한다면 그리 가볍게 볼 수 없다. 특히 가족 기업이 전체 기업 수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가족 기업의 창업주나 현 경영자가 사망하면 기업 경영의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기업 붕괴로 연결될 가능성마저 있다. 이러한 이유로 EU중소기업법은 "기업 승계는 창업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한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승계 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식 발표한다. 또 기업 승계 현황 통계를 상시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도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적 목적에 따라 표본조사가 이뤄진다. 반면,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전수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다. 제한적 범위 내에 일부 실시한 적이 있으나 공식 통계 자료로 활용되지 않아, 얼마나 많은 기업이 이런 문제로 문을 닫았는지, 기업 승계에 어떤 애로가 있는지, 향후 대책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가 전무한 실정이다.

獨·日, 기업승계 정부차원서 조사

사정이 이와 같으니 자연히 정부 지원책 운영 방식에도 큰 차이가 있다. 독일과 일본은 정부 차원의 기업 승계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장기적 계획을 갖고 실행하면서 지원책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은 기업승계거래소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 승계가 필요한 기업이 승계 필요성을 제기하면 인수나 경영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나 경영자를 소개해준다. 또 인수 과정에 필요한 자금도 지원해 준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기업 승계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기업 승계가 이 절차에 따라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적극적인 노력에도 최근 일본 중소·중견기업의 30% 정도가 승계자를 구하지 못하여 '대폐업 시대'를 맞고 있다.

기업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기업을 승계할 만한 유인이 많아야 한다.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기업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법인세·상속세 등 세제 개편이 이뤄지면서 기업 승계 유인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와 반대이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 기업 승계 지원 정책을 추진하기는커녕,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도 축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외국의 입법례를 따라 기업승계세제라는 틀을 만들면서, 징수 유예라는 기본적인 틀을 갖추기는 하였지만, 적용 대상 기업 범위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적용 요건도 엄격해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 축소하려는 법안들이 계속 발의되거나 입법 예고되고 있다.

기업 승계에는 공익재단법인과 차등의결권 제도 등이 활용된다. 유럽·미국·일본의 경우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주식에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 범위를 넓혀 기업이 거의 영구적으로 승계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구에 의하면 독일 기업들이 기업재단 즉 공익재단을 활용하는 가장 기본적 이유는 '가족 기업의 영속성 유지'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법인 주식의 50%, 미국은 20%까지 공익재단 출연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5%에 불과하다.

승계 막으면 고용 늘릴 유인도 감퇴

한국은 왜 이렇게 낮을까. 대기업 집단이 공익법인을 활용해 부당하게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측면 때문에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 출연 한도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공익법인 출연 방식을 통한 기업 승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5%로 기업 지배가 가능하겠는가. 일반 주식보다 주당 의결권 수가 많은 주식을 인정해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제도도 도입되지 않아 순조로운 기업 승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고령의 창업자 입장에서 보면 기업 승계가 안 될 경우 기업을 계속 번창시킬 유인이 감퇴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기업 승계에 관한 논의는 오직 세금제도에만 국한되고, 그 혜택 또한 축소 추세에 있다. 오늘날과 같은 개방경제 아래서는 우리 기업이 외국 기업과 경쟁하여 살아남아야만 비로소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선진국 기업들에 비하여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들과 동일한 정도의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공정한 경쟁'이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부의 세습'과 '기업의 승계'를 구분, 고용 유지를 전제로 하는 기업 승계의 경우 지원해주는 세련된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경영자 고령화 추세에 맞춰 경제 발전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원활한 기업 승계가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은 조금씩 퍼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 마련 차원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아직 한참 처진 수준이다. 기업 승계 실태 조사와 승계 데이터 구축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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