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View & Outlook

불안한 한국경제, 韓銀 역할에 달렸다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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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2.1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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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Economy]

경기 부양·통화 안정·재벌 개혁 등 수많은 문제 산적해…
총재 어깨에 '주식회사 대한민국' 달려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오는 2022년까지 한국은행을 이끌 차기 총재를 선택하는 일이다. 이주열 현 한은 총재 임기는 오는 3월 말 끝난다. 그냥 연임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1970년대 이후 처음 연임하는 한은 총재가 될 것이다. 사실 현 정부는 신임 한은 총재 선정 말고도 중요한 문제가 산적해 있긴 하다. 평창올림픽과 남북 갈등, 적폐 청산, 미국 무역 보복 등 다양한 정치·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다. 차기 한은 총재는 그중에서도 경기 침체 위험과 미국발 통화전쟁 가능성에 대한 대응, 새 정부 경제 정책에 따른 충격 흡수 등 세 가지 과제를 책임져야 한다.

한국은행의 첫 번째 과제는 경기 부양이다. 한국 경제는 올해 3%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마이너스 0.2%로 집계됐다. 그 어느 때보다 긴 추석 연휴로 10월 근로 일수가 줄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안심하긴 어렵다. 수출은 호조이지만 반도체 깜짝 실적에 의존한 수치일 뿐, 자동차 수출은 여전히 우울하다. 진짜 문제는 한국을 둘러싼 무역 여건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다. 지난달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30% 관세를 더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강경 보호무역 조치의 최종 대상은 사실 중국이지만,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개방 경제는 이 같은 고래 싸움에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무역 환경이 나빠지면 한은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기는커녕 다시 금리 인하를 고려해야만 할 수도 있다.

미국發 무역·통화전쟁에 대비해야

두 번째는 통화 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막무가내로 무시하는 것은 물론 더 큰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미국발(發) 통화전쟁이다. 지난달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명백하게 달러 약세가 미국에 유리하다"며 지난 23년 동안 유지해온 강(强) 달러 정책을 포기할 의사를 밝혔다. 미국이 약(弱) 달러화 정책으로 전환한다면 원화 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고, 이는 한국 수출에는 중단기적으로 큰 악재다.

다음으로는 현 정부가 표방하는 재벌 개혁 과제에 대한 대응이다. 현 정부는 재벌 위주 경제 생태계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믿고 있다. 1991년 이후 처음으로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을 추진하는 등 이를 손보려 하고 있다. 물론 재벌 개혁도 필요하지만 일자리 창출과 창업 활성화를 위해선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예산 지원 등이 더 시급하다. 당장 최저 임금 인상만 해도 역풍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재벌 개혁 직접 지원해선 안돼

정부의 재벌개혁을 지원하는 건 한은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 한은의 역할은 정부와 민간 사이를 잘 조정하는 신뢰할 만한 중재자가 돼야 한다. 한은은 트럼프 시대에 적절한 통화정책을 이끌어 나가고,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활력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민간에 ‘립 서비스’도 자주 해야 한다. 이 총재가 연임하든, 다른 차기 총재가 등장하든 상관없다. 올해야 말로 한은이 한국 경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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