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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핀테크… 국내시장을 송두리째 英·美·中에 내줄건가

엄봉성 케이아이비넷(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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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2.1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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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요즘 들어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모바일 금융거래가 급증하고, 2개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출범하여 금리와 수수료를 파괴하고 있다. 또 용어조차 생소한 P2P투자와 대출, 로보 어드바이저가 달성한 높은 펀드수익률, 그리고 비트코인 열풍 등에 관한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금융 서비스 분야에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것이 핀테크인데, 여기에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까지 가세해서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혁명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다.

외국보다 다소 늦게 도입되었지만, 국내에서도 핀테크는 다양한 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은행은 물론, 대규모 고객군이나 가맹점망을 가진 온·오프라인 유통회사, 인터넷 포털 등도 매출 확대를 위해서 간편결제나 송금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런데 금융회사도 아니고 가맹점망도 없지만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금융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창업기업도 있다. 해외에선 페이팔, 스퀘어, 알리페이, 벤모, 스트라이프, 트랜스퍼와이즈, 렌딩클럽 같은 새내기 기업들이 짧은 기간에 기업가치 1조가 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기업은 초기엔 틈새시장을 겨냥하게 마련이다. 파레토 법칙에 의하면 고수익을 안겨주는 상위 20%의 소비자는 이미 기존의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소규모 새내기 기업은 당장의 매출이나 수익은 작아도 자기만이 독보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80%의 꼬리부분(long tail)에 집중하는게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생존 확률을 높인다고 보는 것이다.

롱테일 전략이 용이한 핀테크

핀테크 분야에선 첨단 ICT나 데이터 분석 기술을 이용하여 더욱 용이하게 이런 롱테일 전략을 실행할 수 있다. 은행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결제나 송금 서비스, 금융회사로부터 직접 대출이나 투자를 받지 못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한 대출과 투자, 소액자산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 등이 롱테일에 속하는 핀테크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대중은 새로운 핀테크 기업의 대두에 환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모바일 이용률이 세계 최고수준이고, 은행 간 금융 결제망 같은 금융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어서 얼핏 보면 모바일 핀테크 서비스의 최적지같다. 실제로 은행 같은 금융회사는 외부 핀테크 회사에 의존하기보단 자체적으로 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개발해왔다. 게다가 금융 서비스의 안전성이나 금융 소비자 보호 등을 내세운 감독 당국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새로운 핀테크 서비스 도입이나 외부 사업자의 금융 결제망에 대한 접근은 매우 보수적이거나 폐쇄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이런 사업환경 속에선 창업기업의 핀테크 시장 참여는 매우 어렵다. 특히 은행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지급결제와 송금 분야에선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졌다 하더라도 새로운 참여자가 발붙일 여지가 별로 없다. 해외에서 성공한 핀테크 회사가 한국에서 창업했더라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거란 푸념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요즘엔 이런 장벽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몇몇 은행은 핀테크 기업과 상생을 위해 자체적으로 인큐베이팅을 시도하고 있고, 공동으로 핀테크 플랫폼을 구축하여 금융 결제망에 대한 외부 사업자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해주려 한다. 정부와 감독 당국도 금융과 IT의 융합을 목표로 지원센터를 설립하였고, 앞으로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는 등 핀테크 지원에 힘쓰고 있다.

금융권·핀테크 업체 협업 유도해야

세계적으로 보면, 영국, 미국, 심지어 중국까지도 자국의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 철폐는 물론이고 갖가지 지원책을 실시해 왔다. 영국은 오랫동안 세계의 금융 중심지로서 키워온 금융 경쟁력을 핀테크와 융합을 통해서 더욱 강화하고자 각종 금융과 세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 또한 뉴욕과 실리콘밸리의 양축을 중심으로 엄청난 투자자금과 벤처기업에 우호적인 생태계 속에서 많은 핀테크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비교적 금융산업이 낙후되었던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후진성이 신생 핀테크 기업에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했는지, 알리페이는 일거에 모바일 결제와 송금시장을 장악한 후에 자산운용과 은행업까지 진출했다.

급속도로 글로벌화하고 있는 핀테크 산업의 추세를 볼 때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국경이 없는 핀테크 서비스의 속성에 비춰볼 때 이대로 가면 국내시장을 송두리째 이들에게 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소극적인 규제 완화를 넘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육성해 나가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간 수없이 제기돼 온 규제 체계의 네거티브 방식 전환은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정부 내에서 확실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무엇보다도 금융권과 핀테크 기업 간 협업을 유도하는 등 우호적인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핀테크 서비스부터 시작하여 벤처기업들을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키워야 한다. 이야말로 이번 정부가 표방하는 혁신경제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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