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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非인간화의 길 걷지 않길

니컬러스 데이비스 세계경제포럼 사회혁신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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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1.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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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Tech]


니컬러스 데이비스 세계경제포럼 사회혁신분과장
니컬러스 데이비스 세계경제포럼 사회혁신분과장
500년 전인 1517년,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무명의 성직자 마틴 루터는 당시로선 그리 특별하지 않은 행동을 하나 했다. 가톨릭 교회가 어떻게 '면죄부(免罪符)'를 팔 수 있느냐는 격문을 교회 정문에 붙이고 이에 대한 토론을 요구한 것이다. 당시 교회는 연옥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 줄 수 있다는 명목으로 신도들에게 고가의 면죄부를 팔아 재정 일부를 충당했다.

지금도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에 붙인 '95개조 반박문'이 종교개혁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루터는 그 반박문으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지만 사실 기성 철학, 기성 신학, 기성 정치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들이 루터 이전에 수도 없이 많았다. 왜 그들 중 루터가 주목받았고 중세를 무너뜨리는 격변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새로운 기술의 역할이 가장 컸다. 루터가 그의 주장을 펴기 몇십년 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라는 이름의 대장장이가 새로운 형태의 인쇄 시스템을 개발했다. 기존의 목판 인쇄술보다 훨씬 싸고 빠른 방법이었다. 그의 인쇄기는 인간의 아이디어 보급 속도와 폭을 혁명적으로,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증대시켰다. 1455년 구텐베르크 인쇄기는 하루에 200페이지씩 성서를 찍어냈다. 베테랑 필경사들도 하루에 고작 30페이지 정도밖에 써 내지 못한 시절이었다. 루터가 활동하던 시절엔 인쇄기 속도가 하루 1500페이지로 향상됐다.

루터는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퍼트릴 수 있는 수단으로 인쇄 기술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루터는 짧고 명확하게 글을 썼고, 게다가 독일어로 책을 썼다. 라틴어,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로 되어 있던 성서를 시정잡배들이나 쓰는 독일어로 번역 출판한 것이 루터의 가장 큰 공헌이다. 라틴어 성서가 180부 인쇄될 때 루터의 독일어 성서는 10만부 이상 찍혀 시중에 풀렸다. 인쇄기는 종교 논쟁의 접근 가능성을 높여, 교회에 대한 반란에 불을 붙였다.

기술 발전이 공동체 분열시키지 않아야

루터 시대의 인쇄술이 기존 체계를 교란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방위적인 기술 융합은 기존 기술 지형도를 무너뜨릴 것이다. 루터의 경험에서 우리는 교훈 두 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우선 현상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1546년 트렌트 공의회는 교회의 승인 없이 라틴어 성서가 아닌 성서를 인쇄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더 눈여겨봐야 할 교훈이 있다. 루터는 애초 기성 교회에 학자적인 논쟁을 요구했을 뿐이고, 그의 생각을 인쇄술이라는 기술로 퍼트렸을 뿐인데, 이어진 결과는 비참했다는 사실이다. 개신교로의 종교개혁은 교회 권력을 찢었을 뿐 아니라, 유럽 전 지역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유럽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종교 분쟁인 '30년 전쟁'으로 이어졌고, 수 세기 동안 종교는 극악(極惡)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쯤에서 자문해 봐야 한다. 어떻게 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기술이 건설적인 사회적 토론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쓸모없고, 순진하고, 지나치게 도덕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사회는 더 분열되고, 공동체는 더 갈라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기술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바꾸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인간 본성의 좋은 부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인간의 정체성, 권력의 속성, 그리고 기술의 상호 작용을 더 섬세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루터의 시대보다 그 능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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