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View & Outlook

트럼프에게 선물상자 기대 말라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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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1.0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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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m]
최선의 시나리오는 한·미 FTA 협정 유지… "TPP·사드·북핵…한국만한 파트너 없다" 일깨워줘야
아베 헛발질에서 교훈… 거대한 성과 기대 말 것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아부와 아첨'이 뒤따른다. 미 국회에선 그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고, 내각에선 장관들이 돌아가며 그의 총명함을 칭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마다 레드 카펫이 깔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에 현명하게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상으로서는 25년 만의 국빈 방문'이라는 영예 속에서 환영 의전, 예포가 장착된 군대 사열, 국회 연설, 문화 예술 공연 등을 한껏 누릴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문 대통령을 방문하는 첫 외국 정상이라는 점에 대해 트위터로 자주 글을 남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오는 7~8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기대치를 더 낮추는 편이 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북한 정권과의 긴장 완화를 원하는 문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할 수도 있고, 견고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고 공정한 무역 협상을 약속할 수도 있으며, 중국과의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한국의 편에 서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는 별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보 우산을 FTA 협상에 활용할 듯

지난 9개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통해 우리가 배운 점은 그가 쉽게 잊거나, 부인하거나, 협약을 깨뜨리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무효화했고,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다자 간 이란 핵협정 파기까지 거론했다. 조만간 23년 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깨뜨리거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무시하기 시작할 가능성도 크다.

한·미 FTA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도 이 같은 무시 전략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발효된 지 5년 된 무역 협정을 '끔찍한 거래'라고 지칭한 만큼, 방한 기간 한·미 FTA 재협상이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치는 '미국 우선 전략'은 곧 한국은 후순위임을 뜻한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한·미 FTA를 파기하지 않도록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4월 "미국(기업들)은 한국에서 좌절했다"는 그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전제하에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어떻게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피해 없이 무역 협정 재협상을 이뤄낼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간 양자 무역 협정을 위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압박했다. 그래서 일본 역시 두려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아베 정부가 트럼프 정부로부터 유리한 조항을 얻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베 총리의 협상팀은 트럼프 측이 미국의 안보 우산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문재인 정부도 미국의 이 같은 전략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문 대통령은 한국에 다른 선택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미국이 걷어찬 TPP에서 한국이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미국에도 한국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부분을 일깨워 줘야 한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북한을 겨냥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든지, '꼬마 로켓맨(김정은)' 같은 글을 올려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제(THAAD·사드)에 한국의 지원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강조해야 한다. 물론 사드 배치는 5000만 한국인을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드는 도구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미사일 사거리 확장에 대해 미국을 위한 억제 수단이기도 하다.

"미국에도 한국이 필요" 강조해야

이번 국빈 방문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만남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지난 1992년 기자회견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국빈 방문을 통해 두 정상이 "자유로운 국제 무역 체제를 강화하고 양국의 경제 관계를 확대할 방안에 대해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결과를 재현할 확률은 0%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하지 않은 내용까지 들었다고 주장하는 스타일이다.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제로섬(zero-sum) 틀로 판단한다.

제프 킹스턴 미 템플대 도쿄캠퍼스 아시아학과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조건부 항복과 비굴할 정도의 존중을 요구한다"며 "미국이 한·일 양국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한·일 양국이 미국을 더 필요로 한다고 이미 판단했기 때문에 미국의 국익을 둘러싼 협상에서 강경 노선을 택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더 멀리 볼 것도 없다. 지난해 11월 전 세계 그 누구보다 먼저 뉴욕의 트럼프타워까지 달려가 트럼프 정부에 구애한 아베 총리가 그동안 얻은 것이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국빈 방문 중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방한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그를 칭찬하고 치켜세워주면서도, 백악관으로부터 큰 승리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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