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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심기 건드리지 않고 FTA 문제 푸는 방법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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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9.1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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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경제 칼럼니스트
이미 서명까지 끝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협정문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서 TPP 탈퇴를 결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끔찍한 딜(deal)'이라고 신경질 내는 걸 진실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지 W 부시 정부와 본격적 협상을 시작해 버락 오바마 정부와 협정을 체결했던 한국으로서는 웬 심통 사나운 어린아이가 종이를 찢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걸 보는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상식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최근 몇 주 사이 급속도로 악화된 한국의 안보 상황을 되짚어보자.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은 북한을 자극했다. 북한의 몰상식한 행동을 좋게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북한이 미국을 도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북한은 과거 수십 년에 걸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고, 계속해서 한반도에 지정학적 위협을 가했다. 상황이 단번에 바뀐 것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의 미끼를 물어버린 다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 부활을 꿈꾸고 있다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방안 또한 함께 찾아 둬야 한다.

안보와 무역 협상을 먼저 분리하라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배치에 화가 난 중국이 한국의 관광부터 산업까지 전방위로 공격하듯, 트럼프도 이런 전방위 공격에 나서지 말라는 법이 없다. 트럼프는 언제든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삼성·현대차·LG 등 주요 수출 기업에 대한 관세를 대폭 높여 버릴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 주의 깊게 대처해야 한다. 트럼프는 협상을 철저한 '제로섬게임'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안보 문제로 미국과 얽혀 있는 소규모 경제권은 무조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안보 문제 때문에 FTA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피하려면, 한국이 먼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미리 '한·미 FTA와 안보 문제는 별개로 논의해야 한다'고 권고해야 한다. 두 가지 문제를 확실히 구분하지 않는 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약점을 이용해 미국의 자동차·전자 제품·엔터테인먼트 수출 제한을 풀라고 압박하고 나설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우리는 무역 협상을 하러 온 대표단이니 북한 문제나 안보 문제는 국방부와 논의하라'고 확실하게 선언해야 한다. 협상을 요구할 때마다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 대신 '협박(blackmail)'에 가까운 태도를 취해 온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포지션을 흔들기에는 이런 식의 명확한 태도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에 응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좋다고 본다. 가령, 자동차 수리 이력 고지 등 미국이 그간 장벽이라고 주장해 왔던 규제를 없애겠다는 제안을 해 트럼프의 위신을 세워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지나친 양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한국인이 미국산 자동차를 많이 사지 않는 이유는 포드·GM이 생산하는 자동차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미국 차를 사고 싶어 하던 사람들은 한·미 FTA가 있건 없건 미국 차를 샀다.

트럼프 위신 세워주며 시간 끌어라

시간 끌기도 대처법이 될 수 있다. 트럼프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숱한 스캔들에 휩싸여 지지율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다양한 검토와 협상 제안을 통해 시간을 끌면서 천천히 트럼프 이후 새 지도자가 나서길 기다려볼 만도 하다. 미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트럼프와 같은 시각으로 무역을 바라볼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트럼프 입맛에 맞춰 섣불리 협상을 체결해 두는 게 손해일 수 있다.

한국에는 그 밖에도 여러 선택지가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다. 한국은 미국과의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중국과 더 긴밀한 협력 관계를 다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미국이 판을 엎고 나와 버린 TPP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논의를 떠나 한국은 자체 경제 체질 개선에도 힘써야 한다. 수출과 재벌 위주의 성장에 기댔던 과거의 관행에 의존해서는 미래가 없다. 한국 경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줄 여러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이를 통해 경제가 커 나가는 환경을 구축하지 않으면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백악관의 입김에 휘둘리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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